한동안 금줄이 처진 당산나무와 당집을 찾아 뻔질나게 돌아다녔다. 때론, 하필이면 귀신나무를 찾아다닌다고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당산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가정과 마을의 안녕과 평온을 기원했던 대대로 믿음의 안식처였다.
지난 10월 말에는 칠곡 동명면 남원리 노거수 당산느티나무와 군위 부계면 대율리, 춘산리, 가호리 마을에 있는 보호수를 둘러 보았다. 그 때, 학산 마을의 500년 된 당산나무와 돌무더기 조산이 있음을 알아 한 번 찾아보려 했던곳이다.
범안로를 타고 4차 외곽순환도로로 국우터널을 지나 국도 25호선으로 내려섰다. 다부동 고개를 넘어 가산 나들목, 남구미로 이어지는 학하리 보건진료소가 있는 학림초등학교 당도했다. 유학산(839m) 북쪽의 엉뚱한 곳을 찾아 들었으니 큰 낭패였다. 서문시장 총명 탕 한 첩 먹어야 할 것 같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와 학산리(원정마을) 500년 당산 느티나무를 만났다. 돌무더기 조산은 세월의 이끼를 머금고, 잎 떨어진 노목의 가지는 파란 하늘에 용트림하고 있었다. 깊은 산골임에도 비보 산을 조성한 사연이 궁금했지만, 당산제마저 오래전부터 끊어졌다 한다. 예전, 정월 10일 이전 을 봐서 제관과 복직(음식 만드는 사람)을 선임하여 제의를 올린 동제 축문도 남아있는 민속 신앙의 혼이 사라져 없어짐이 안타깝다.
다시 학산리 듬티 마을 은행나무 당산을 찾아갔다. 이 골목 저 골목의 개들이 외부 사람을 경계하라는 신호로 컹컹댔다. 수령이 420년이나 된 은행나무는 산기슭 밭 가장자리에 터를 잡고 있었다. 높이 10 여 미타쯤의 몸통 속이 시커멓게 탄 흔적으로 뻥 뚫어져 있었다. 불에 타거나 벼락을 맞은 듯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국가의 환란(청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6.25 동란)시 ‘윙~윙’ 울었다 한다.
한국전쟁 시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유학산 전투의 승리가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곳이다. 오래된 날, 유학산 정상을 올랐던 기억이 엊그제 같았다. 길목에서 가산산성으로 올라가는 동명면 학명 마을에도 오래된 보호수가 있다고 했는데 아쉬운 여운으로 삼았다.
<여정 메모>
언제:2022.12.11. (일) 09:00~14:00
어디:칠곡군 가산면 학산리(원정, 듬티 마을)
누구:청산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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