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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김천 여행 - 불령산 청암사(靑巖寺)로 가다

- 청암사 -

 
  수도산(修道山:1,317.1m)을 처음 올랐던 적이 1991년 6월 1일이다. 강산이 3번이나 바뀐 세월이 지났다. 그 뒤 2번이나 더 산행했었던 기억이 맴돌지만 희미하다. 그 수도산 산행 때 들머리 날머리였던 곳이 오늘 탐방하는고찰 청암사(靑巖寺)다. 희미한 기억 저편이지만, 처음 산행은 '영애' 씨와 함께 김천에서 버스를 타고 '가막재' 꼬부랑 비포장길을 넘어 첩첩산중 청암사 입구에 내렸다. 절간 채전밭 사립문을 밀치고 계곡을 따라 수도암 뒤 능선으로 올랐다. 
 

-자목련 꽃/육화료.청암사 승가대학 앞-

 
  그리고, 두 번째는 경내로 들어서다 길이 없다는 여승의 깐깐함에 되돌아 나와서, 우측 능선을 타고 정상을 올랐다. 내려오는 길목의 수도암에서 고마운 분을 만나 대구까지 편안하게 온적이 있다. 그다음, 세 번째는 남 소장 가족과 함께 수도암 계곡을 내려서면서 탱자나무 울타리의 '새 밥'을 딴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모두가 오래된 이야기다. 그렇지만, 청암사에 대해서는 그때 까칠했던 목소리만 언제나 함께해온 기억으로 남아 있던 곳이다.
 

- 길 다방에서 커피 한 잔/ 문양역 -

  
   대구 건들바위역에서 08:30분 출발하여, 다사읍 문양역 앞, 길 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하빈면 동곡리와 낙동강 성주대교를 지나 가천면 903번 도로를 탔다. 가야산 칠불봉으로 오르는 포천 계곡 신계리(용사마을)로 이어지는 오지 길이다. 작년 12월  '증산 가천터널,1.8km, 성주군 가천면 신계리 - 김천시 증산면 장전리'  개통으로, 성주 댐을 돌아갈 때보다 40여 분이 단축되었다. 청암사의 자목련꽃을 보기 위해서 나선 걸음이지만, 개화 시기가 좀 이른 것 같아서 증산면 관내 노거수(장전리 마고실, 평촌리 장뜰, 증산 면사무소, 황정리 봉산마을)를 둘러보고자 장전리 622번지 500년 당산 느티나무를 찾아갔다.
 

- 장전리 보호수 느티나무 -

 

- 증산면 장전리(마고할 마을) -

 

- 산책 중인 동네 어르신 -

 

- 장전리 당산느티나무/뒤편 벚꽃 -

  
  증산 면 소재지로 들어서서 김천의 명품 흑돼지 삼겹살로 중식을 하고, 수도암으로 올라섰다. 평촌리(장뜰)는 현재 '김천 쏨씨 마을'로 지정되어 집마다 특색(술 빚는 집)있는 쏨씨를 뽐내고 있는 곳이라 한다. 깊은 산중 한적한 마을 골목길은 늙은 벗나무가 유난히 맑고 하얀 꽃잎을 흩날리고 있었다.
 

- 김천 솜씨 마을(평촌리 장뜰) -

 

- 동네 한바퀴 -

 

- 꽃비 흩날리는 장뜰마을 -

 

- 장뜰 마을 / 화사한 벚꽃 -

 

-솜씨 마을 / 가마솥 -

   조선 중기의 대학자 한강(寒岡) 정구(鄭絿,1543~1620) 선생이 성주 댐 상류 대가천에 무흘구곡에 대한 아름다움을 읊었다. 그중 4곡이 - 6/옥류동, 7/만월담, 8/와룡암, 9/용추폭포 - 증산면 내에 자리한다. 약 8km 달하는 수도리 계곡 상류 옥동천에, 높이가 17m 이르는 용천 폭포가 굉음을 내면서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면서 수도암으로 올랐다. 수도암은 신라 헌안왕 3년(859) 청암사와 함께 도선국사가, 지금은 없어지고 터만 남은 "쌍계사"의 소속 암자로 건립했다고 전한다. 경내에는 3점(석조비로자나불좌상, 석조 보살좌상, 동서 삼층석탑)의 보물이 있다.(수도암 안내 글).폭포 가는 길옆으로 인현왕후 기도 길이 다듬어져 있었다. 

 

-용추폭포 입구 출렁달리 -

 

- 제9곡 용추폭포 -
- 용추폭포 옆의 실폭 -

 

- 수도암 안내 글 -

 

- 수도암/천왕문? -

 

- 사천왕을 대신하는 선녀벽화 -

 

- 대적광전 및 동 서 삼층석탑 -
- 장독대 -
- 증산면소재지 -

 
  청암사 경내로 올라섰다. 원래 일주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사찰로 올라가는 길인데, 주차장으로 바로 가는 바람에, 이끼 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비껴간다. 현 직지사 말사인 청암사도 도선국사에 의해 수도암과 함께 창건했다고 한다. 대웅전으로 건너갔다. 청암사의 전각 배치는 산중 사찰답게 계곡을 중심으로 좌(범종각, 극락전, 보광전, 선원, 부도전 등), 우(대웅전, 승가대학 육화료 ,중협당 청암사 율원 등)로 분리 배치가 특이하다. 대웅전 들러서 합장하고 육화로 승가대학을 둘러봤다. 아직도 자목련은 한두 송이 꽃잎을 내밀고 있었다. 여승의 까타로운 심성은 여전했다.
 

- 청암사 전각 -

 

- 청암사 이끼계곡 -

 

- 청암사 대웅전 목조여래좌상 -

 

- 청암사/ 육화료. 승가대학 -

 

- 청암사/게곡 /좌: 범종루. 우:청암사 전각 -

 
  극락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솟을대문 앞으로 넓은 채소밭이 있고, 대문 양옆으로 돌로, 쌓은 담벼락이 울타리처럼 길게 쌓아져 있는 안쪽에 사대부 집안을 짓고, 폐출된 인현왕후가 3년여 동안 기거한 인연을 가진 곳이다. 지금은 극락전으로 쓰이고 있으나, 조선 19대 숙종 왕 시대 서안과 남인의 당쟁이 극한으로 치달을 무렵,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인현왕후는 서인으로 폐출되었다가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복위된 유일한 왕후다, 그때 청암사와 수도암을 오가며 복위 기원을 했었던 길을 고증하여 인현왕후 길로 복원했다. 많은 여행자가 걷는다고 한다. 
 

- 극락전 -

 

-청암사 보광전/배레석 -

 

- 벽암대사 사리탑/청암사 부도전 -

 

- 청암사 부도전 -

 
  증산면 행정복지센터로 갔다. 옛 '상계사 터'에 남아 있는 200년~250년  '유성리 소나무' 3그루를 보기 위해서다. 1951년 7월 14일, 수도산 일대의 북한군 잔병이 쌍계사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블길이 이틀 간이나 탔다했다. 등 굽은 소나무를 둘러보고 면사무소 뒤편의 상계사지에 금당지로 추측되는 축대, 주 초석, 연화대석을 바라보고 돌아 나와 마을 끝머리 맡에 있는 종형 부도 1기와 3기의 비를 찾아갔다. 비문과 당호를 알 수 없었다.
 

- 증산면 사무소 가는 길목의 벽화 -

 

- 쌍계사 터의 소나무 -

 

-쌍계사지터 안내 글-

 

- 쌍게사지 터/주춧돌 등의 흔적 -

 

- 쌍게사 부도 -

  
  마지막 탐방지로 황정리 봉산마을로 올라갔다. 증산초등학교를 좌로 돌아 지례면으로 넘어가는 903번 지방도로 변이다. 굽이굽이 넘는 재 넘는 가막재에, 올해부터 3년여에 걸쳐서  터널 공사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대덕면으로 가는 30번 국도도 보통은 아니다. 황정리 550살 당산 느티나무(男神)는 밑 둥치가(둘레 10m)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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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리 550살 당산 느티나무 -

 

- 황정리(봉산마을) 전경 -

  
   들머리 소나무 숲에 함께 자리한, 200살 전나무 두 그루와 조산(돌무더기) 2기가 여신(女神)이다. 옛날 동제를 올릴 땐 1년에 두 번 이나 제를 지냈다고 전한다. 첫 번째, 먼저 웃뜸(봉산)마을은 (1월1일, 7월1일) 상당산(느티나무/남신)에게 제를 지내고, 아래마을 하당산(전나무)쪽으로 제상을 돌려서 제를 올렸고, 두 번째, 아랫뜸 마을은(12월 31일,7윌 2일) 상당산 남신에게 지내고, 하당산  여신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서 새로 제상을 차려서 지냈는데, 1980년대 이후 명맥을 잇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황정리 여신 나무/전나무 및 조산-
-- 황정리 여신나무/전나무 2그루 -

  
  서낭당(성황당, 당산나무, 당집 등으로 불려지는 토속 신앙은 마을의 안녕과 평화와 액운을 방폐하는 공동체의 훈기였다. 지금은 차츰차츰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지역 기관장(경산 중방동 보름날 동제, 수성구 욱수동 보름날 당산제 등)이 참석하여 고유한 전통을 이어 가는 곳도 있다. 참 다행스럽고 고맙기 그지없다.

 

- 경산시 중방동 보름동제/24.02.20 -

 

- 욱수동제/뒤편 중앙(수성구청장) /25.02.12 -

 

- 욱수동 동제/초헌관 제배/25.02.12 -
- 박태기나무/용학도서관 -

 

- 철쭉꽃/범물 복지관 -

 
 
<여정 메모>
- 일시:2026.04.14(화) 08:30`19:00.
- 어디:김천 청암사 일원
- 누구:만오외 2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