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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칠곡 여행 - 한국전쟁의 보루, 왜관철교를 탐방하다

- 호국의 다리(구 왜관철교) 전경 -

 

 
풍전등화(風前燈火)! 
동대구역 대경선 14번 플랫폼에서 09:00 구미행 열차를 탔다. 1950년 6월 25일, 밀물같이 쏟아져 내려온 북한군에 의해 동족상잔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그 아픔의 현장, 구 왜관철교를 탐방코자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나섰다. 그저께 부터 나라 안은, 온통 물난리로 재난이 발생(사망 10명, 실종 7명,이재민1,500여명)했다. 특히 광주광역시는(강수량:500밀리 미터/2일간)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것처럼 내렸다고 한다. 비는 중부 지방에도 엄청난 폭탄을 퍼붓듯이 극한 호우가 이어졌다. 왜관역 광장 뒤 육교를 넘어 석전 마을로 걸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걷는 걸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 동대구역 진입/대경선 열차 -

 

- 구미역을 향해 출발/왜관역 -

 

- 00기지 연결 철도/왜관역 -

 
 
비는 우산을 접기에는 그러하게 내렸다. 일기예보는 오늘도 전국적으로 많은 비를 뿌릴 것으로 전망했다. 한 10여 분의 걸음품으로 묵헌종택(默軒宗宅)에 닿았다. 성리학자로 '증보동문헌비고'를 편찬한 '묵헌 이만운(1736~1820)'. 종택의 문고리 장식이 아름다운 대문을 살짝 밀치면,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자리한 10칸의 사랑채가 펼쳐져 보인다. 함초롬히 비를 맞은 잔디가 더욱 파랗다. 사랑채 뒤로 돌아들면 무궁화,백일홍 꽃가지에 에워싸인 불천위 사당과 그 안쪽으로 "ㅁ" 형으로 트인 정침(안채)이 자리한다. 안 마당 한쪽에 장독대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종택은 화려하진 않아도 아늑한 품위와 그윽한 향기가 서려 있었다. 집 앞 둔덕에 '통정대부 행사간원 정언 묵헌 이선생지묘'가 있다.
 

-묵헌종택 -

 

- 대문고리 장식/묵헌 대문채 -

 

- 묵헌 종택 사랑채 -

 

- 묵헌 종택 사랑채 뒤 안채

 

- 묵헌 고택 사랑채 죽담-

 

- 통정대부 행사간원 정언 묵헌 이선생 지묘 -

 

- 홍살문/동산재-

 

- 동산재 전경-

 
 
광주이 씨 3대(귀암:이원정, 낙촌:이도장/귀암 父, 정재:이담명/귀암 子) 제사를 지내는 동산재를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귀암고택으로 내려간다. 동산재는 명문가다운 곳에 택지를 했다. 골목을 돌아들면 솟을대문이 우뚝 선 사대부 집안의 풍미가 넘치는 기와집이 위풍당당하다. 귀암고택이다. 귀암(1623년/광해 4~1680년/숙종 6) 은,1652년(효종3) 대과아원으로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의 중직을 받았다고 한다. (귀암고택 안내글).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과 사랑채가 반긴다. 좌측 불천위 사당이 있는 곳으로 돌면 보호수 회화나무가 우뚝하다. 숭문조(사당) 담장 안은 배롱나무와 350년을 함께한 향나무가 고택의 품격을 대변하고 있다. 창수문(사당 출입문) 처마의 낙숫물이 정적을 일깨운다.
 

- 귀암고택-

 

- 귀암고택 사랑채-

 

- 귀암고택/사당-

 

-숭문조/사당-

 

- 보호수 배롱나무& 향나무 -

 

- 귀암정사 -

 

- 보호수 회화나무-

 

-귀암고택;오세창 글씨 -

 

- 창수문 처마 낙숫물 -

 
와촌 손칼국수로 중식을 한 뒤, 석전 2리 마을로 올라갔다. 비는 세차게 내리진 않았지만, 우산을 접었다가 펼치게 했다. 벽화 골목은 석전중학교 담벼락 건너편에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었다. 벽화의 전성기는 아마도 2000년대 초창기일 것 같다. 도심 발전에 뒤 처진 지역의 슬럼화 방지를 위해, 골목 정비, 보안등 설치, 복합 문화공간 건립 등으로, 새로운 도시 새마을 운동(공동체)의 한 차원인 도시재생사업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그마저 재개발사업으로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 석전리 벽화골목 -

 

- 석전리 벽화골목-

 

- 석전리 벽화골목 -

 

- 석전리 벽화골목 -

 

- 석전리 벽화골목 -

 

- 석전리 벽화골목 -

 

- 석전리 벽화골목 -

 

- 석전리 벽화골목/물을 주는 소녀 -

 
 
한국전쟁, 최후의 보루 낙동강 격전지였던 호국의 다리(구 왜관철교)로 걸음을 했다. 애국 공원 아래로 내려서면, 1905년 경부선 기차길 개통과 함께 낙동강을 건너면 짧은 터널(구 왜관터널)을 만난다, 1941년도 경부선 복원화 사업으로 철로가 이설됨으로 활용이 중지된 채 지금껏 남아 있는 곳이다. 터널로 걸어 들어갔다. 날씨 탓인지 아니면 조명 불이 없어서인지, 안은 어두컴컴해서 반대편 입구로 걷지를 못하고 되돌아 나와 호국의 다리를 건넜다. 경부선 개통 시, 단선 '왜관 철교'에서 복선 철교 개설로 한동안 '왜관 국도'로 활용되다가, 6.25 전쟁 시 북한군의 저지를 위해 연합군의 강제 폭파로 대한민국을 구한 다리라, 지금은 '호국의 다리'로  불러짐과 사람만이 건널 수 있는 '인도'로 기능하고 있다. 그날 핏빛으로 얼룩진 강물은 세월의 땟물 황톳빛으로 넘실됀다. 하루 빨리 유유히 흘러가는 푸른 강물을 바라보고 싶다.
 

-애국동산 -

 

- 구 왜관터널 안내글 -
- 구 왜관터널 -

 

- 구 왜관터널을 걷고있는 청산 -

 

- 호국의 다리 안내글 -

 

- 낙동강 -

 

- 호국의 다리를 건너는 자전거 -

 

- 구 왜관철교 -

 

- 왜관시장 -

 

- 왜관시장/전통장날(1.6일) -

 

- 왜관역앞 시가지 -

 

-왜관역사 -

 

- 대경선 하차 승객들/대구역 -

 

- 홍련/경산 진못 25.7.15(화).10.28 -

 

 

<여정 메모>

- 언제 : 2025.07.19(토) 09:00~17:00

- 어디 : 왜관읍 일원(묵헌 종택, 귀암고택, 석전 벽화골목, 구 왜관터널, 호국의 다리(구 왜관철교)

- 누구 : 2인(만호,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