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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압량유적지(押梁遺蹟)


- 압량유적(압량리197번지 소재) -

사적 제218호로 지정 되어 관리되고 있는 경산시의 압량유적으로 갔다. 유적지는 지방호족 국가였던 압독국이 멸하고 신라의 김유신(金庾信)이 압량주 군주로 있을 당시 군사 훈련장이었다고 전해오는 곳이다.


지난번 압량유적의 들머리를 찾지 못해서 신상리 고분을 둘렀다 온 곳이기에, 이번에는 발품을 팔기로 작정하고 나섰다. 2, 28 국채보상기념 공원에서 309번 영남대학교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경산으로 가는 길 목의 가로수는 울긋불긋하게 치장을 하고 있었다.


한 시간 가량을 달려서 압량면 버스 종점에서 내렸다. 점심 시간이 지나고 있어서 종점 기사 식당을 기웃거리다 ,건너편 돼지 국밥집에서 점심을 때우고 나니 2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전번 경산과학고등학교 길에서 경산IC 방향으로 내려가다 입구를 찾지 못했기에, 신대부적지구 지방공단 조성지 입구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우후죽순 세워진 공장지대로 들어갔다.


공장 뒷편의 야트막한 구릉지에 누렇게 잎이 물든 활엽나무들이 보이는 곳이 유적지일 것으로 짐작하고 좁고 길 다란 마을 안으로 바삐 걸었다. 막다른 골목의 굳게 닫힌 공장 담벼락에 아래에 한국문화재 보호재단 문화재 연구단이 발굴한 옛 훈련장 우물터로 추정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서 옳게 찾아 온 것이라 생각했다. 비 바람에 너덜너덜한 안내판이 우리나라 문화재 관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쓰레 했다.


압량유적은 압량리 179번지 소재한 곳과, 압량리에서 동서 1,2Km 지점의 압량 내리 389번지에 위치한 유적, 그리고 북동쪽 3,2Km 정도 거리에 있는 진량면 선화리 948번지에 있는 세 곳을 통틀어서 일컬었다.


압량유적은 야트막한 구릉지에 6~7m 정도의 높이로 토축을 쌓아 올렸는데, 그 둘레가 300m 정도, 직경이 80여 메타가 되어 보이는 광장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서편 한 곳에는 고분총같은 길이 10m, 높이 3~4m가 됨직한 훈련 지휘소 역할을 할 수 있는 일련의 장대(將臺)기능을 하는 토루가 쌓아져 있었다.


고향이 압량이라는 분의 도움으로 내리와 선화리 유적의 위치를 확인하고, 경로당 앞으로 해서 벼가 베어진 들녘 길을 걸었다. 멀리 이달 1일부터 전구간이 개통된 경부고속 철길이 파란 하늘에 마루금을 긋고 ,그 위로 기차가 배~암 같이 미끄러져 지나갔다. 주황 빛깔의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 밭 사이 고개를 넘어 내리 마을 유적으로 찾아 올랐다.


내리 유적도 압량리 유적과 규모나 형태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적지를 한 바퀴 돌아 복숭아 밭 가장자리 길로 해서 압량리 유적지로 나왔다. 종점의 버스를 타기 전에 조영동 고분을 다시 보고 나왔다.


저녁 해가 성암산 자락에 한 뼘이나 걸려있을 무렵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정 메모 >

- 일 시 : 10.11.6.(토) 11:00~17:30

- 곳 : 압량유적(압량리, 내리일원)

- 함 께 : 청산인

- 압량리 유적의 장대(將臺) -


- 압량리 들녘 수로 -

- 내리 고개길 감나무 밭 -

- 내리 마을 뒷편의 내리유적( 나무가 우거진 구릉이 유적)-

- 장대 토루 위의 내동 유적 표지석 -

-광장에서 바라본 내리유적 장대(고분총 같은 나무가 우거진 곳)-

- 내리 유적에서 압량 유적으로 돌아 나오는 길목의 탱자나무 울타리 -

- 압량리 들녘( 멀리 고속 기차가 달린다.) -


- 압량 조영동 고분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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