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역 6번 플랫폼! 1531 무궁화호 2호차 46번 좌석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기차는 덜컹 앞뒤로 한번 미 끌어지더니 출발했다. 07: 29분 동대구를 경유하는 부산행 기차다. 차창 밖은 안개가 자욱했다. 밤과 낮의 일교차가 10도를 넘어서다. 청도역에서 진주행 KTX-산천을 먼저 보내느라고 5분 여를 기다렸다. 기차는 상동역, 밀양역, 삼랑진역을 거쳐서 08:35분, 원동역에 숨을 고른 뒤 부산으로 향했다.
플랫폼에서 역사로 나서지 않고 낙동강 쪽으로 걸었다. 벚나무 잎들이 발갛게 물들었다. 밤 새 달려온 강물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고요하다. 엷은 아침 안개가 강 건너 산기슭에도 내려앉았다.
구름다리를 건너 대합실로 나왔다. 매표 창구는 한산하고 적막했다. 꼭, 무인 대합실로 운영되는 것 같았다. 그만큼 가고 오는 사람이 적은 간이역으로 남아있는 역사 중의 한 곳으로 변신 중이다. 수년 전 밀양댐을 거쳐 원동 매화꽃을 보러 나서다, 되돌아간 적이 있다. 원동 '순매원 매화 축제' 는 봄날 여행지 베스트 5 드는 곳이다.
역사를 빠져나오자 역 앞 거리는 간판 등을 복고풍으로 꾸며, 추억의 거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파출소와 우체국을 지나는 뒷골목은 7080 만화 거리로 ‘로봇 태권V’이가 그려져 있었다. 그 옆 골목에는 마을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는 수호신인 당산 할배(팽나무)께 제사를 지내는 당집이 있었다. 당집 대들보엔 ‘ 2004년 12월 16일 4시 입주상량, 응천상지삼광. *인문지오복 ’ 이란 상량 글이 쓰여 있다.
원동역의 추억 쌓기는 기차(대구-원동) 타고, 나룻배(원동 나루-용산나루) 타고, 버스(생철리-삼랑진역)를 탄 무척산(702.5m) 산행을 인연으로 해서 토곡산(855.3m, 원동초교-정상-복천정사-물금읍, 원동초교-정상-함포마을,서룡리-중앙능선 -정상-원동초교) 등산 이었다. 그리고 천태호가 있는 천태산에서 (영포마을 – 어영마을 – 금오산 – 열두들 마을) 밀양시 단장면 국전리로 넘어선 걸음이었다.
경남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나루터 신(진신)을 모신 제당인 가야진사를 찾아간다. 원동마을회관 삼거리에서 경부선 삼랑진 방면 기찻길 옆 농로를 30분가량 걸어야 하는 거리다. 대중교통(버스, 택시)이 불편한 곳이라서 발품을 팔았다. 역 앞 무료 자전거 이용도 가능 했지만, 가을과 함께 걷기로 했다.
가야진사는 ‘삼국사기’에 가야진에서 중사에 해당하는 국가 제례를 올렸다는 기록이 전하며, 나라에서는 향촉과 칙사를 보내 국가의 무운을 기원하였다 한다. 사당은 정면, 측면 각 1칸의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 건물이다. 홍살문이 세워진 제단은 2011년 복원되었으며, 현재에도 매해 5월 낙동강 용신에게 제례를 올리는 ‘가야 용신제’가 봉행 되고 있다 한다.(안내 글)
낙동강 자전거 종주 길을 달리는 마니아들이 화창한 가을 날씨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당곡 마을로 걸어 간다. 가야진사에서 10여 분 걸음 길이다. 마을회관 옆 당산나무를 찾아가는 길이다. 새끼로 금줄이 쳐진 당산나무는 팽나무로 수령이 그다지 오래는 되지 않아 보였지만, 마을에서 신성시하는 공간이다. 1022번 지방도로를 따라 함포 마을로 간다.
12:00, 원동삼거리 길촌식당에서 점심 겸 휴식을 가진 후 함포 마을로 향해 또 걷는다. 아직도 전 구간이 완성되지 못한 69번 국가지원 지방도로다. 원동중학교를 지나 배내골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다. 함포 마을회관이 보이고 좌측 논 가장자리에 품위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 당산나무는 아닌 것 같았다.
“모친 예, 마을의 당산나무가 어디에 있나요?”
작은 오토바이에 비료를 싣고 오다, 떨어뜨린 마을 안 어른에게 잽싸게 물었다.
“아이고, 당산나무는 동네 안에 저게 아~잉~기요.”
손으로 가리는 마을 쪽에 윗가지가 잘린 검은 나무가 당산나무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저게는 할매 당산이고, 할 부지는 저 건네 새파란 집 보이지. 그 아래 나무가 우북한 곳, 저곳이 할배 당산이 있지“
두 그루 할매 당산나무는 몸통이 썩어져 봉합 수술 받았다. 새로 난 가지가 하늘로 손을 펼치고 있어, 반갑기도 하고 가엽기도 했다. 마른 잎사귀를 매만져 보았지만 무슨 나무인지 알 수 가 없었다.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인심이 좋은 막다른 집 안을 통해 사방 댐이 쌓아진 계곡으로 올라섰다. 함포 마을 당집은 저만치 돌담으로 둘러싸인 기와를 올린 단칸 사각 집으로, 우람한 당산나무(참나무)와 함께 있었다. 골 깊은 개울가 불타는 울창한 산림, 음산한 분위기는 신령 서럽게 다가왔다. 생각지도 않았던 당산나무와 당집을 바라보는 마음은 형언할 수가 없다. 당집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퇴색된 신위(지방)가 덩그러니 있었다. 대들보 상량문은 “2005년 1월 14일 오시 입주상량”이라고 원리마을 당산제와 엇비슷했다.
‘원리 함포마을 동제 유적’ 안내 굴에 의하면 당산제는 매년 정월 보름날 새벽에 지냈으나, 마을 인구와 청년층이 줄어든 10여 년 전부터는 인근 사찰의 승려가 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사방댐 건너편 언덕 위에 2017년 준공된 사방댐 조성공사 건립 오색 비가 세워져 있었다.
원동역으로 되돌아간다. 15 : 25분 동대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다. 아침에 못다 둘러본 골목을 이리저리 둘러서 원동초등학교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함초롬히 가꾼 가을꽃에 물을 뿌리는 ‘원동달팽이’ 농촌 민박 펜션을 운영하는 내외분을 만났다. 2층 옥상으로 올라와서 감 사진을 촬영하라는 친절함에 탐스러운 가을을 마음껏 담았다.
아침 08:35분부터, 오후15:25분 원동역을 떠나는 약 7시간여의(원동 추억의 거리, 가야진사, 당곡 ,함포마을 당산나무) 원동역은 또 다른 그리운 추억을 쌓았다.
<여정 메모>
- 언제 : 2022.10.29. (토) 06:40~17;00
- 어디 : 양산시 원동면 일원
- 누구 : 청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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