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우리나라가 60~70년대 반공·방첩을 국시로 삼던 시절, 전국 곳곳 마을의 공공건물 벽면에 붙이거나 쓴 표어다. 감물리 농협창고 벽에는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감물리를 무척 오랜만에 찾아간다. 감물리는 밀양시 3대 오지마을 중의 한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삼랑진읍에서 밀양 표충사와 노벨 CC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가 감물리를 지나는 만큼 분주하다. 또한 전원주택이 아름다운 환경 속에 들어찼다.
감물리를 10여 년(2009.10.4.) 전에 들린 적이 있다. 그때도 오지마을 황금빛 다랑논을 보기 위해서였다. 마을에는 멈춰 선 정미소도 있었다. 비포장 감물고개를 넘어 염동 마을과 우곡리로 내려서 만어사와 숭진리 삼층석탑을 둘러봤다. 근래에는 용소마을 뒤편에, 감물리 다랑논 전망대까지 만들어져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다.
범안로를 나설 때 동쪽 하늘은 온통 붉은 여명으로 가득했다. 새 부산 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대구~부산)를 올라서자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추분이 지나자마자 일교차가 커서인지 안개는 감물리까지 동행을 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감물리는 전원주택, 포장길 외에 큰 변화는 없어 보였다. 물론 정미소도 없어지고, 벼를 심은 다랑논 배미는 줄어 보였다.
일찍 서두른 걸음은, 아침 해가 산마루로 올라서지 못했다. 예전엔, 마을 안으로 발을 들이질 않아서 못 보았던 오래된 농협 창고 건물에는 ‘근면, 자조, 협동’이란 글과 함께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란 표어가 세월의 훈장처럼 남아 있었다. 맞은편 슬레이트 지붕 아래 미닫이문이 달린 점방 흔적도 있다.
중리마을(감물리=중리, 구기, 용소)과 용소마을로 올라간, 한 시간 (06:40~07:30) 여를 기다린 들판에 아침 햇살이 내려왔다. 들녘은 금새 황금 물감으로 물들여져 나갔다. 힘찬 붉은 여명, 한 치 앞 안개, 찬란한 들판,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를 체험한다.
용소마을 당집과 당산나무가 있는 논길로 내려갔다. 당산나무는 느티나무도, 팽나무도 아닌 느릅나무 같아 보였다. 오색 천 조각이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감물리 다랑논 전망대와 고깔봉 종석 너들을 뒤로하고, 감물 고개를 넘어 삼랑진읍 행곡리( 안촌마을)로 향했다.
행곡리 가는 길목에서 검세리 당집과 당산나무(팽나무)를 우연히 보고, 안태호를 지나 행곡리로 들어섰다. 국가 산림문화 자산 안촌마을 당산 숲을 찾아간다. 안촌 경로당 곁에 있는 당 숲을 찾는 대는 숨바꼭질 할 때 술래보다 더 힘이 들었다. 경사진 곳에 지어진 노인 쉼터······, 주목받는 전원주택······, 당산 숲과의 괴리는 필연적일 것이다.
삼랑진읍 송지시장 노점에서 단감을 산 뒤, 밀양 시내로 왔다. 2010년 4월에 복원한 밀양 관아(선조 25년/1592년 건립, 임진왜란 소실, 광해군 3년/1611년 재건 등··· )를 살펴보고, 아리랑 시장에서 늦은 아침 겸 점심을 했다. 공정 여행에 조금 이나마 기여됐을까?
조선시대 사림의 거두 김종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567년 밀양부사 ‘이 경우’가 건립, 1871년 철폐. 그뒤 복원한 예림서원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목에는 산외면 엄광리 숲 촌마을 숲을 둘렀다가 청도 팔조령을 넘었다. 15시가 조금 지났다. 밀양 여정을 잠시 쉬어갈까 한다.
<여정 메모>
-언제 : 2022.10.01. (토) 05:40~16:00
-어디 : 단장면 감물리, 삼랑진읍 행곡리, 산외면 엄광리, 부북 면 예림서원 등
-누구 : 청산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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