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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선사 시대로의 – 대구 여행

- 봉무동 불로제방에서 바라본 금호강/우측 산비탈이 화담산 -

 역사는 지나온 세월이고 세월은 미래의 새로운 역사이다. 설 안 날(1월31일), 봉무동 화담산에 유택을 마련한 “취몽헌 이양채(1724~1796)의 무덤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조선의 유학자로서 대구(공자 이름 구)를 대구(심방변 언덕 구)로 바꾸자는 상소를 올린 당사자이다. 비록 채택은 되지 않았으나 지금의 대구로 써진 계기가 된 역사 속의 한 인물이다.

 

- 인천 이씨 종중 묘소 -

 

 선사 시대로의 여행

대구의 시대별 빙하기,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삼국, 고려, 조선, 항일, 해방 후 - 각각의 유적(정만진, 대구와 풍경 , 역사진흥원) 지와 대구 달서구청이 발간한 2만 년을 이어온 선사 시대로 여행을 중심으로 한 대구 여정을 나섰다.

 

- 대구, 경북의 고대 유물/국립대구 박물관 -

 

 상인동 입석/달서구 상인동 1569 (당산 어린이 공원)

무척 오래전 둘러본 곳인데,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대표적인 거석문화 유적이다.상인동 입석은 원래 달배 마을 어귀 밭에서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한다. 옆에는 돌로 쌓은 조산과 가지가 말라가는 당산나무가 서 있다. 대구지역 외 둘러본 곳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선돌 중 가장 큰 칠곡군 지천면 신동 입석(경북 기념물 제29)”과 목포 북항 넘어 신안군 압해도 동서리 선돌”, 가깝게는 경산 대정동 일원에 있는 6기의 커다란 선돌을 대면하면 왠지 신령 서러움을 느낀다.

 

- 상인동 입석/당산 어린이 공원 -

 

 진천동 입석(진천 유적공원) & 진천동 고인돌(고인돌 소공원)

범물동에서 앞산 터널과 보훈병원 네거리를 지나 대구 수목원으로 가는 상화로를 따라가면, 오른편으로 보이는 원시인 조형물뒤편에 진천동 유적공원이 있다. 진천동 입석으로 불리는 유적은 발굴(1997.10.25.~1998.1.26.) 결과 청동기 시대의 제사유구로서 역사적 가치를 높게 사, 사적 제411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인근 500m 이내 거리에 고인돌 소공원에는 3기의 고인돌이 주택과 빌라 담장 가운데 있다.

 

- 진천동 입석/사적 제411호 -
- 진천동 고인돌/고인돌 소공원 -
- 고인돌 소공원 인근 돌담 -

 

 대천동 청동기 유적/대천동 353-5 (한샘 공원)

지하철 1호선 진천역 1번 출구로 올라와서 청동기 유적공원 까지는 도보로 20분 이내 거리(1.1km). “이안 월배아파트(대천동 511-2 일대)”를 개발하면서 발굴(2006.7.10.~2007.3.21.), 움집터와 무덤에서 무문토기, 반달칼 등이 출토 되었다. 또한, 유적지에는 석곽()68기가 집중되어 있어, 대구 지역의 청동기시대 매장유구로 단일 규모로 최대라 한다. 해마다 정월 보름날 동제를 올렸던 300년 된 당산목 화화나무 앞에는 한샘(대천동)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그 뒤로 이전한 대천동 고인돌 상석 3기가 있다.

 

- 대천동 선사 유적지 조형물 -
- 선사 유적지 유물 -
- 대천동 고인돌 상석 -
- 대천동 당산나무/제일 뒤쪽 회화나무 -

 

 월암동 청동기 유적/월암동 218-5 (선돌공원)

대천동 청동기 유적지(한샘 공원)에서 걸어서 10(480m/네이버 길 찿기) 정도 거리인, 성서 4차 지방 산업단지로 가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지하차도 앞에 위치한다. 아직 개발이 덜 된 곳으로써 도심의 갑갑함을 벗어남이 좋다. 또한, 하늘을 치 닿은 소나무가 높은 기개를 펼치고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발굴(2015.11.2.~2016.1.28.) , 움집 터, 입석(월암동 입석–Ⅱ) 등이 확인되었으며, 인근의 입석(월암동 입석-)과 상인동, 진천동 고인돌 각1기를 옮겨다 두었다. 길 건너 선돌 마당 공원에는 월암동 입석-이 옛 그 자리에 있다.

 

- 월암동 입석 - 3-
- 고인돌/좌 2기 상인동, 우 1기 진천동 -
- 월암동 입석 -2 -
- 월암동 입석 - 1 -
-월암동 입석 -1 복원 사업 광경 -
- 월암동 입석 옛 사진/좌-입석3/1991년.중- 입석2/1990년.우- 입석1/1983년
- 경산 대정동 선돌/2021.3.5 -

 

 월성동 구석기 유적/월성동 739 (조암 구석기 공원)

선돌공원을 둘러보고, 다시 도보로 25분 거리(1.4km/차로 이동)에 있는 대구 최초의 인류를 만나는 조암 구석기 공원을 찾았다. 월성동 구석기 유적은 월성 월드메르디앙 아파트(월성동777-2번지 일대)”를 개발하면서 발굴(2006.4.1.~2006.11.30.) 되었다 한다. 좀 돌날, 흑요석 등 13,184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우리나라 구석기 문화의 기초자로가 됨은 물론 대구도 한반도 고대문화의 출발지 중 하나였다고 자부하게 된다. 1998년 북구 서변동과 수성구 상동에서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어, 신석기 인들의 주거 공간으로 확인되면서 대구의 역사를 5천 년으로 만들었고, 월성동 구석기 유적의 발견으로 대구의 역사를 2만 년으로 끌어올린 곳이다. 무척 오래된 날, 연천군의 시티투어 버스로 전곡리 선사시대 유적전시관을 둘러봤다. 또한, 제천 점말리 동굴을 찾아본 기억도 난다.

 

- 조암 구석기 유적 공원 -

 

 민족 저항 시인 이상화() 묘소 & 천내리(화장사) 고인돌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 중략 -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중략 -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 중략 -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서러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이상화 기념관-

이상화(1901.5.23.~1943.4.23.)의 대표작이다. 일제 강점기시 땅을 잃은 농민의 슬픔과 땅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 한다. 이는 현실을 극복하면서 땅(조국)에 대한 소망(나라)을 되찾고 싶은 열망이라 했다. 상화는 그토록 염원했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도 못했다. 이상화 기념관과 이장가 문화관은 공휴일이라서 빗장이 걸려 있었다. 남제(,제실) 앞으로 해서 이장가의 가족 묘원을 둘러보고, 천내리 고인돌이 있는 화장사로 갔다.

 

- 이장가 가족묘원/뒷줄 오른편 이상화 묘 -

 천내리 고인돌은 모두 8기가 한 곳에 있다. 대구 교정시설 담 밖으로 4기가 있고, 화장사 담벼락에 한 기가 끼여 있다. 절 안쪽에 3기가 있다. 강화 고인돌 유적, 고창 고인돌 유적, 화순의 고인돌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997(2000.12.2. 지정)로 지정되었다. 지금으로서는, 가창 냉천리 고인돌과 천내리 고인돌이 어쩌면 대구를 상징하는 고인돌이 아닐까 싶다.

 

- 대구 교정 시설 -
- 천내리 고인돌/교정시설 밖 -
- 화장사 담벽의 고인돌 -
- 화장사 경내 고인돌 -

<여정 메모>

- 언제:2022.02.02.() 11;00~18:00

- 어디:상인동 입석 외 선사시대 유적 공원 5

- 누구:청산 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