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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원류 – 창원(昌原) 봉림사지(鳳林寺址)

- 창원 봉림사지 전경 -

 

  창원 중앙역

1039, 창원 중앙역에 내렸다. 광장으로 나서니 저만치 승강장에는 택시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의 버스정류장에는 달랑 2대가(210. 221) 멈춰 있었다. 봉림휴먼시아1단지로 가는 221번 버스는 1055분에 출발 대기 중이라고 교통 전광판에 밝히고 있었다.

 

- 창원 중앙역 전경/좌측 끝에 산이 정병산 -
- 대기중인 버스 -

광장에서 쳐다보는 하늘이 유리알 같이 파랬다. 아침, 경산역 2번 플랫폼에서 창원 행 기차를 기다리는 손끝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한 시간의 겨울 햇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2백 리 남쪽을 찾은 보답인지, 따스한 날씨만큼이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 창원행 1903 무궁화호/경산역 -
- 삼랑진을 지나면서/미전천 -

정시에 버스가 출발했다. 차 안의 승객은 단 혼자뿐 이었다.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초행길이라고 정중히 부탁하고 앞자리에 앉았다. 일찍이 창원은 계획된 도시라서 인지 사방팔방으로 곧게, 넓게, 균형 있게 형성되어 있었다. 도청사거리를 지나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멋진 숲길을 거쳐 봉림산(295m) 자락의 봉림휴먼시아1단지 승강장에 내렸다.

 

- 창원 한들초등학교_
- 봉림사지 안내 표지판 -

 

  봉림사지 1.1km

어디로 가야 하나?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막막했다. 길을 건너는 중년의 아주머니는 내린 곳에서 되돌아 나가 보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멀어져 갔다. <창원 한들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걸었다. 다행히 길 찾기 지도에서 벗어나지 않아 한발 두발을 옮겼다. 한들공원 입구 봉림1교에서 오른편으로 보이는 Y자 길목 산 밑에 붉은 안내판이 보였다. 저 길로 올랐던 블로그 님 덕분이다. 안내판에는 봉림사지 1.1km.

 

- 뒤돌아 본 휴먼시아 1단지 아파트 -
- 봉림사지 가는 길목 -
- 봉림산&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소목 고개 이정표-

  봉림산 1.6km & 소목 고개 1.9km

봉림천을 따라 오르는 휴먼시아 1단지와 여러 채의 빌라를 벗어나면, 길은 노폭이 좁은 시멘트 포장길로 이어졌다. 제법 가파른 길목은 무척 한적했다. 어디선가 산 짐승이라도 튀어나올 듯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은 처사(묘지)들을 바라보며 걷는, 또 한 굽이 도는 이정표는 봉림산 정상 1.6km, 소목 고개 1.9km로 적혀있다. 길 가장 자리 골짜기는 텃밭이 군데군데 만들어져 있었다.

 

- 소목 고개 갈림길 -

B 농장 옆 소목 고개로 갈라지는 곳에서부터 봉림사지 가는 길은 비포장 흙길이다. 대나무 잎이 바스락거리는 길모퉁이에서 산에서 내려오는 중년 남자를 만났다. 갈림길에서 봉림사 터 250m라는 이정표를 보았으면서도 봉림사지가 어딘가 물었다. 외진 곳에서 겁먹음을 떨쳐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 대나무 숲 일주문?/ 안쪽이 봉림사 지 -
- 봉림사 지 -

 

  봉림사 터(경남 기념물 제127호)

어두컴컴한  숲길 안쪽으로 밝은 햇살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숲속 저편은 마치 광명의 세계, 극락의 세계일 것 같아만 보였다. 대숲의 일주문을 지나 봉림사 터로 발을 들여놓았다. 부처님이 계신 불국정토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비록 옛 산문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지만 절터 만으로도 성스러운 곳이었다.

 

- 봉림사 지-
- 봉림사 지 기와 편 -
- 봉림사 지 유물/ 멧돌 아랫부문? -

봉림사는 신라 말 구산선문의 하나인 봉림산파의 주찰로서 원감현욱(788~869) 의 제자, 진경대사() 심희( 855~923)가 신라 효공왕(897~912 재위) 때 창건, 스승 현욱을 개산조로 모셨다 한다. 언제 폐사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다. J 재단에서 관리되고 있는 봉림사 지는 사방이 철책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 봉림사 지 -
- 봉림산 정상 안내 이정표 -

  봉림산(295m)을 오르다

철책이 열린 북문으로 나갔다. 멀리 사람들의 흔적이 힐끗힐끗해 걸음을 내디뎠다.  긴 의자와 운동기구 몇 점이 설치되어 있었다. 봉림사지 약수터였다. 약수통은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옆의 계곡물은 졸졸 흘렀지만, 얼음으로 덥혀있었다. 봉림산 0.7km의 팻말이 유혹했다. 그동안 많은 산을 다녀왔지만, 근년에는 새로운 산을 분기에 한 번도 오르기가 어려웠다. 내친김에 걸음을 재촉했다.

 

- 봉림산 정상 표지 글 -
- 정병산 전경 -

  창원의 진산 정병산(566m)을 바라보다

봉림산의 표지 돌은 없었다. 봉림산 295m라고 쓰진 종이 표식이 나무에 달려있을 뿐이다. 정상을 올라온  몇몇 사람이 가볍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소목 마을과 소목 고개로 내려서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온통 바위산인 정병산을 쳐다보았다. 소목 고개는 창원 사격장이 있는 사림동과 동읍 덕산리(옛 소목 마을)를 넘나드는 지름길이라 했다. 이정표는 소목 고개 0.2km, 정병산 0.7km로 표기되어 있다.

 

- 통정대부 순흥 안꽁 묘소 -
- 봉림산 봉림사 -

  통정대부 안공 무덤 & 봉림산 봉림사

소목 마을로의 발걸음을 물리치고 근래에 불사 된 봉림사 쪽 길로 내려섰다. 정상에서 만난 봉림동 주민 한 분과 동행을 했다. 봉림사지로 내려서지 않아도, 상북초등학교로 가는 길이 멀지 않다기에 따라 내렸다. 봉림산은 나지막한 산 같아 보였지만, 실상은 바닷가 산답게 높은 체감의 산이었다. 봉림산 기슭에 자리한 통정대부 벼슬의 안공 무덤과 웅장한 봉림사 대웅전은 봉림사 지와 어떤 연일까?

 

- 봉림동&amp;amp;amp;amp;봉곡동 전경 -
- 상북초등학교 전경 -

  상북초등학교 & 차를 태워준 중년분

봉림동 행정복지센터 앞 봉림 상가 단지에서 점심을 먹고 상북초등학교를 찾아 나섰다. 태복산로 네거리를 좌로 건너 창원천 방향으로 걸었다. 다시 봉곡로 삼거리 횡단보도를 지나 소방도로에 접어 들어서 방향을 잃어버렸다. 저편에서 걸어오는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상북초등학교로 갈려는 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상북초등학교. 어디서 왔는데요.”

대구서 왔는데, 봉림사 절터에 있었던 삼층석탑이 학교에 있어서 한 번 가 보려고요

중년은 고개를 갸웃 등 하더니만, 검은색 승용차의 차 문을 열면서

하, 일로 오시오. 내가 태워다 줄 터니 갑시다

아이 선생님, 괜찮습니다. 택시를 타면 됩니다

트로트 노랫 소리에 차는 골목을 빠져나와 창원천 변 큰길로 해서 중로, 소로를 거쳐 상북초등학교 동문 앞에 데려다주었다. 오미크론(omikron) 시대에 감사했다.

 

- 창원 봉림사지 삼층석탑 -
- 봉림사지 발굴 유뮬 사진/봉림사지 철책에 걸려 있슴 -

  창원 봉림사지 삼층석탑(도 유형문화재 제26호)

상북초등학교는 운동장이 무척 넓었다. 겨울 햇빛을 받은 교정 건물은 정결해 보였다. 탑은 정문 동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 강점기에 반출하기 위해 부산으로 팔려 갔다 되돌아온 소중한 문화재다. 기단(2층 추정)부는 거의 멸실되고 답신부는 3층 모두가 완연하나, 옥계석이 많이 훼손된 고려 시대의 탑이다. 한편, 봉림산문을 떨친 진경대사보월능공탑(, 보물 제362)과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보물 제363)는 현재 국립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 상북초등학교 후문 버스 승강장/창원중앙역 210번 -
- ITX- 새마을 1034/창원 중앙역 -
- 삼랑진 철교에서 바라본 낙동강 -
- 동대구역 -

  여정()을 마치면서

상북초등학교 후문과 정문의 버스 승강장을 왔다 갔다 했지만, 길 물음에 대한 친절함 때문에 그랬다. 창원 시민들은 참 친절했다. 봉림산에서 만난 분, 차를 태워준 분, 창원 중앙역 길을 안내 해준 분, 그분들이 창원을 빛내고 있었다. (버스 기사분은 포항이 정말 친절했고, 창원은 글쎄?) 따스한 봄날, 다시 창원(진해 경화시장)을 방문할 계획을 하고 있다. 16:34분 서울(동대구)ITX-새마을 열차가 홈으로 들어왔다.

 

<여정 메모>

언제:2022.01.18. ()09:00~18:30

어디:창원 봉림사 지. 상북초등학교

누구:청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