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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김해 구지봉의 구지가(龜旨歌) - 금관가야를 세우다

-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호 -

 

龜何龜何(구하구하) :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수기현야) :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약불현야) :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 구워 먹으리

 

  현 김해시 구산동 산 81-2번지 구지봉(龜旨夆, 200m, 사적 제429호)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편 기록에 의하면, 서기 42년 김수로왕이 하늘에서 탄강(誕降)하여 가락국의 왕이 되었다는 가야의 건국 설화를 간직한 곳이다. 또한, 구지봉에서 구간(九干)과 백성들이 수로왕을 맞이하기 위해 춤을 추며 불렀다는 구지가(龜旨歌)가 전해온다. 어디에선가 들었을 직했던 소절이지만 딱히 기억은 없다.

 

- 삼랑진 나들목을 내려서/송지 사거리 -
- 무척산 전경-

  6가야국 최초의 가락국(금관가야) 발생지였던 김해로 가는 길은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그간 김해 쪽은 오래전 산행을 나섰던 신어산(630m)과 생림면의 무척산(703m) 올랐던 추억이 깃든 곳이다. 특히 무척산은 기차(원동역)와 나룻배(낙동강)를 타고, 정상의 천지(天池) 못을 둘러보고 버스(생철리)로 삼랑진역에 닿은 멋진 곳이었다. 하지만, 김해의 속살을 이제껏 들여다보지 못했다.

 

- 대성동 고분군/현재와 과거 -
- 대성동 고분군/고인돌 -
- 대성동 고분군/ 팽나무 -

  삼랑진 나들목에서 내려 경전선 기찻길 낙동강 간이역을 뒤로하고, 삼랑진교 58번 생림대로로 달린다. 왼편으로 무척 오랜만에 쳐다보는 무척산이 감회가 새로웠다. 김해 경전철 박물관역 앞을 흐르는 해반천을 따라 대성동 고분에 도착했다. 옛 지배층의 무덤으로 남쪽 20m의 높이에서 서북 방향으로 300m 길이의 완만한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00여 기의 고분에서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또한, 최초의 순장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한다. 10여 년 전부터 유적 정비를 하여왔으며, 동쪽 일부는 지금도 공사 중에 있었다.

 

-수로왕 비/허황옥 상 -
- 수로왕릉 정문/숭화문 -
- 납릉정문/쌍어문,파사탑 문양 -

 

- 수로왕릉/사적 제73호 -

  가락국(駕洛國:금관가야) 과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42~199)의 무덤은 황후(허황옥)와 거닐었던 수릉원을 지난다. 기와 담장을 따라 숭화문(崇化門) 정문을 들어서면 붉은 기둥에 창살을 세운 홍살문을 먼저 만난다. 서른 곳의 유물 - (殿), (), (), () - 들이 18,000여 평에 함께하는 왕릉은 다시, 가락 누와 능침 정문인 납릉정문(納陵正門)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담장(곡장?) 안에는 마, , 호석과 문·무인석이 각각, 서로 마주 지키고 서 있어 왕릉의 위엄을 더한다.

 

- 구산동/봄이오는 길목 -
- 구산동 골목 -
- 구산동 고분 가는 골목 -
- 구산동 고분/사적 제75호 -
- 구산동 백운대 고분/도기념물 제223호 -
- 백운대 고분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구지봉(소나무 울창한 능선의 끝 지점) -

  분성산(382m) 서남쪽 구지봉(龜旨峯, 200m) 아래에 있는 수로왕비릉(사적 제74)으로 갔다. 16세기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와 왕비(王妃)가 된 허황옥(許黃玉)의 무덤이다. 경내를 들기 전, 인근의 구산동 고분과 백운대 고분을 보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섰다. 집들이 가파른 언덕바지에 앉아 있었다. 길 안내는 부실했지만, 친절한 동네 분에게 물어서 직벽의 돌계단 위에 있는 백운대 고분에 올라섰다.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저 높은 곳을 향하고 싶었던 끝없는 욕망의 터전인가?

 

- 수로왕비릉/사적 제74호 -
- 파사석탑 -

  구남문(龜南門)과 홍살문으로 들어서서 수로왕비릉으로 올라선다. 무덤을 장식한 화려함은 없지만 높다란 봉분(높이 약 5m, 길이 약 18m, 넓이 약 16m)의 원형봉토분이다. 세월의 이끼를 잔뜩 머금은 능비 하나만해도 위용 서럽게 보였다. 비의 글씨가 마멸되긴 했어도가락국수로왕비보주태후허씨릉(駕洛國首露王妃莆州太后許氏陵)” 이라고 선명히 남아있다. 오른쪽 파사각(婆娑閣) 안에는 있는 6층의 파사석탑은, 허 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시집올 때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배에 싣고 온 진풍탑(鎭風塔)이라고도 한다. 1,800년의 세월을 지새워 왔다.

 

- 수로왕 탄강비 -

 

- 구지봉석/고인돌 -

  집단무(集團舞)인 구지가(龜旨歌)에 의해, 황금보자기에 쌓여 내려온 여섯 알에서 제일 먼저 머리를 내민 수로왕이 태어난 구지봉에 올랐다. 성소(聖所)에는 대가락국태조왕탄강지지(大駕洛國 太祖王誕降之地비가 세워져 있다. 그 옆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선 시대 한석봉이 쓴 글씨라는 구지봉석(龜旨峯石)“이라고 새겨진 청동기 시대 무덤인 고인돌이 있다. 기원전 4~5세기경 이 지역을 다스렸던 추장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구지봉은 성스러운 곳답게 아름드리 소나무가 에워싸고 있었다.

 

- 김해 민속 오일장 -
-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가는 길 -

  여정에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기도 하지만, 그만큼 아쉬움을 간직한 채로 올 때도 많이 있다. 이번 여행만 해도 수로왕릉 인근의 봉황대 유적지를 비롯해 김해민속박물관, 김해한옥체험관, 대성동 고분박물관, 김해한글박물관, 김해읍성 북문, 김해향교, 국립김해박물관 등은 둘러보지 못했다. 언제쯤 어리석은 눈을 뜨게 될까?

 

<여정 메모>

- 언제 : 2021.2.22. () 10:30~18:30

- 어디 ; 김해시 일원(대성동 고분, 수로왕릉, 수로왕비릉 등)

- 누구 : 2(청산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