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대구에서 가깝고도 먼 곳이다. 지리적, 물리적으로는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다. 하지만 시간적, 공간적으로는 천년의 세월 속에 존재하는 곳이다. 신라 56 왕 천년(?~935년)의 숨결이 곳곳에 서려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역사문화지구를 중심으로 한, 대릉원을 비롯한 고분과 곳곳에 있는 탑. 불국사, 석굴암 등의 사찰. 황룡사지, 사천왕사지 등의 폐사지에서는 지금도 옛 향기를 머금고 있다.
그 중, 벽도산(437.1m) 지능선 사당(방목)골에 꼭꼭 숨어 계셨던 “율동 마애열반상”부처님, 방내리 단석산 천주암(天主巖/斷石) 길목의 배 바위에 새겨진 나말여초(羅末麗初) “상재암 마애여래 좌상”, 남산 천동골의 천불 천 탑이 새겨진 “천 동탑”, 잠늠골 삼층석탑을 지나 비파 곡 “불무사 터”와 “석가사 터”를 찾기도 했는데,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원찰 “숭복사지”와 인근의 “감산사지 삼층석탑”을 찾아 나선다.
길 나섬은 숭복사 지를 가기 전, 붉은 자장 매가 봄을 알리는 양산 통도사를 먼저 들렸다 가기 위해, 새 부산 고속도로를 탔다. 청도를 지나 밀양 나들목에서, 지난해 12월 11일 구간 개통(밀양~울산 45km.)한, 함양~울산(142km) 간을 잇는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재약산(8km)과 신불산(6.5km)을 통과하는 국내 최장(15km) 터널을 지나게 된다. 통도사는 서 울주 나들목에서 내려야 한다. 하지만, 온산공단이 자리한 울주 나들목까지 가는 바람에, 배내골 나들목으로 되돌아 다시, 신불산 터널로 해서 통도사에 닿는 법석을 떨었다.
- 양산 통도사 전경 -
오랜만에 들린 산사가 낯설어 보였지만, 붉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을 알리는 350년 된 자장 매화가 있는, 영각 앞뜰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 됐다. 봄은 아직 처마 끝머리에 멈칫거리지만, 중천에 뜬 햇볕을 받은 매화꽃이 춘심을 흔들었다. 그 옆 음향 각과 금당 축대 화단에도 두 그루의 홍매화가 자라고 있었다. 영산전 뒤편의 응달 진 곳이라서 꽃망울이 이슬방울처럼 달려 있다. 그 앞을 공룡 같은 카메라 렌즈가 금세라도 집어삼킬 듯 쳐다보고 있다.
봉발탑과 용화전을 둘러보고 삼층석탑을 지나 세존 비각 앞으로 해서 대웅전으로 올라섰다. 삼보사찰 중 불보사찰로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향하여 삼배했다 법당을 나와 구룡연과 산운각. 삼성각을 돌아 천왕문과 구름다리를 건너 주차장에서 통도사 여정을 마감했다. 주마간산 격이다. 54개에 달하는 전각의 부처님 세계를 알지도 못하면서 폐사 지를 찾아간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에는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이 안식처를 마련한 곳이다. 능의 영역이라는 표식의 8각 화 표석, 서역인 모습을 한 무인석 1쌍, 관복에 칼을 감추고 있는 문인석 1쌍과 사위를 바라보는 4마리 돌사자를 좌우로 마주 보게 세워 왕릉을 지키고 있다. 신도(神道)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뽀얀 잔디를 밟으며 능침으로 간다. 밑 둘레 약 69m, 지름 약 22m, 높이 약 7.4m이며, 봉분 둘레에 있는 병풍 면석에는 십이지신상이 돋을새김 되어있다. 그 밖으로 돌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왕릉은 울창한 소나무가 에워 사고 있다.
괘릉 안 마을에는 구휼, 육영, 독립운동가를 지원했던 수봉 이규인(秀夆. 李圭寅, 1859~1936) 선생이 건립한 수봉정(秀峯亭)이 있다. 1924년에 서당과 약국으로 건립한 2층 건물을, 1953년 단층으로 개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안채에 후손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대문이 활짝 열려있어 둘러볼 수 있다. 이른 봄날의 오후 햇살을 품은 정원에는 고택이 풍기는 품위 있는 향기를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명문가의 음덕을 대대로 물려받은 따뜻함이 아닐까 싶다.
감산사지(甘山寺址)를 찾아갔다. 수봉정에서 차로 5분여 거리인, 괘릉리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절터로서, 통일신라 성덕왕 18년(719),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과 국왕 및 그 가족의 안녕을 빌기 위해 세웠다 한다. 현 감산사 대적광전 뒤뜰에는 옛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5년에 다시 세운 “감산사지 삼층석탑(경북도 문화재자료 제95호)”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1915년 절터에서 “석조 아미타여래 입상(국보 제82호)” 과 “석조 미륵보살 입상(국보 제81호)“이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한다.
감산사를 나와 “활성리 석불입상(도문화재 자료 제96호)”이 모셔진 연지암을 들렸다가 숭복 사지로 간다. 말방리 절터에서 깨진 기와 편으로 숭복사 터임이 밝혀진 넓은 사지 한쪽은, 높다란 철판 가림막이 둘러 처져 있었다. 현재, 동·서 삼층석탑을 해체 복원 (공사기간 : 2018. 05. 23~2020. 07. 21) 공사 중이다. 탑의 규모나 형태는 알 수는 없으나 탑은, 몸 신 · 옥계석의 일부분이 사라지고 없다한다. 하나, 양 탑의 기단부에는 팔부신장이 새겨져 있어 원찰 위엄을 갖추었다 한다. 동쪽 어귀에는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에 옮겨져 있는 “숭복사지 쌍귀부”를 복제하여, 최치원이 쓴 사산비명 중 “초월산 대숭복사비”가 2014년에 복원되어 있다.
숭복사지 금당 터에 서서, 외동 넓은 들판 위로 봄바람이 나풀대는 금오산을 바라본다. 하루해가 저만치 산허리를 넘고 있다.
<여정 메모>
- 언제 : 2021.02.09. (화). 10:30~19:00
- 어디 : 통도사, 원성왕릉, 감산사지 삼층석탑, 숭복사지
- 누구 : 4명(은별 네 2, 청산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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