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비화 가야국 창녕군 남지읍으로 가을 나들이를 나섰다. 마분산(馬墳山, 180m) 자락을 넘어 돌아 나오는 낙동강 벼랑길이다. 남지 개비리 길은 남지읍 용산리창나루 마을에서 영아지마을에 이르는 낙동강 강변 절벽 길로, 남강이 낙동강을 만나 몸을 섞는 기강(岐江) 유역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길이다. 약 3㎞ 정도의 거리로서 수십 m의 수직 벼랑의 중간에 나 있는 '남지 8경'의 한 곳일 만큼 길목은 그 풍광이 유려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마자 의병을 일으킨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1552~1617) 장군은, 개비리 길이 있는 마분산(馬墳山, 180m)에 토성을 쌓고 왜적과 싸워 승리를 거뒀다 한다. 또한, 6·25 때는 부산을 점령하기 위해 창녕으로 밀고 내려온 북한군에 맞서 국군이 배수진을 치고 싸운 끝에 가까스로 저지한 낙동강 최후 방어선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때 강물이 피로 물들 정도로 큰 희생을 치렀으며 폭파된 남지철교는 복원 후 등록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올해 2월 초순부터 창궐한 코로나19는, 유채꽃 만발한 남지읍의 봄 축제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가을 행사까지 붙잡아 매고 있다. 용산리 주차장 억새 전망대에 올라서면 오후 햇살을 받은 새하얀 억새와 연분홍 핑크뮬리 꽃물결이 눈을 부시게 만든다. 그 너머로 낙동강과 남강이 만난 여울의 물빛도 한층 더 반짝인다.
마분산(용산리)을 오른다. 나무 계단으로 이어지는 초입은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20여 분의 된비알을 오르면, 2개의 긴 의자가 가쁜 숨을 쉬어가게끔 한다. 상수리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자라고 있다. 붉고 노랗게 물이던 가을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쉰 걸음을 얼마 내딛지 않아 창나루 전망대에 이른다. 나뭇가지를 조금만 손질하면 더 없는 조망일 터인데 아쉬움을 남기는 곳이다. 무덤 2기와 산악회 리본이 복잡하게 달린 소나무 가지에 ‘마분산 180m’ 이란 종이 표지가 정상임을 알리고 있다.
산길은 여러 가지 재미있는 – 6남매 나무, 삼 형제 나무, 목동의 이름 새긴 돌 - 이야기를 꾸며놓아서 걷는 내내 웃음을 주기도 한다. 영아지 마을 0.9km 전 삼거리 정자에서 한참을 쉬었다가 영아지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내려선다. 용산마을로 되돌아 나가는 개비리길 시작점이자 용산마을에서 걷는다면 도착 지점이다. 낙동강이 시원스럽게 눈앞에 펼쳐 보인다. 흰 모래 톱 강변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가을 햇볕 아래 강물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황 씨 할아버지 댁 누렁이의 개비리길 전설을 적어둔 안내 글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개는 예나 지금이나, 영리함을 타고 났었던 모양이다. 강변을 따라 걷는 길은 운치가 그만이다. 특히 화려한 가을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를 바라보면 마음도 풍요롭다. 눈 처마 벼랑길은 폭이 1m 정도라서 한 줄로 걸어가야만 안성맞춤 격이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소통하는 역할을 한다는 대나무 숲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수백 년이나 되어 보이는 연리지 팽나무가 지켜 서 있고, 생존본능을 자극하여 열매를 더 달리게 한 “여양 진씨 감나무 시집 보내기:감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어서 상처를 유발하여 본능 자극” 흔적이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남아있다. 붉은 돌 홍의장군 신발과 미루나무가 우뚝 선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둔치에는 억새가 눈꽃을 이루고 있다.
돌아오는 길목에 관음사를 찾았다. 1928년 5월 인근 보광 사지에서 옮겨온 고려 초의 “창녕 도천삼층석탑(도문화재 자료 제18호)”과 “창녕 관음사 석등(도문화재 자료 제22호)”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석등은 푸른색의 화사석과 지붕돌(옥개석)로서 처마 전각의 용(龍) 새김이 특이했다. 맞은편 담벼락 앞에 석종형 부도 한 기도 자리하고 있다. 옥개석 받침이 2단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설법보전(대웅전)과 천불전 사이 전각에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르나 고려 시대 마애불의 특징이 보이는 “창녕 관음사 미륵불 비상(도문화재 자료 제21호)“ 이 모셔져 있었다. 미륵불 비상의 하반신은 파손되었고, 오른쪽 어깨 부분은 세로로 반듯하게 갈라져 있어 한국전쟁 시 관음사의 화재로 인한 충격이라 했다.
가을걷이를 마친 들녘에, 양파를 심는 농부들의 일손이 분주하다. 그 머리맡으로 저녁 어둠살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여정 메모?
-언제:2020.10.27. (화) 10:30~14:30
-어디:창녕군 남지읍 개비리길
-누구:일삼회 부부(6명)
'황금가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제주 여행/첫째 날(11.05.목. 4-1) – 섬 속의 섬 비양도 (0) | 2020.11.18 |
---|---|
옛 그대로 골목길 – 복현1동을 가다 (2) | 2020.11.15 |
옛 숨결이 서린 곳 –한정리/석불 · 연당리/서낭 (0) | 2020.11.01 |
옛 돌담 골목을 걷는 – 상수월 마을 (0) | 2020.10.14 |
옛것(서낭당)을 찾아가는 길 – 금곡마을 · 화산마을 (0) | 2020.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