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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옛것(서낭당)을 찾아가는 길 – 금곡마을 · 화산마을

-금곡리 숲 공원 -

  가을이 무르익어 간다. 몇 날을 벼르고 벼른 끝에 찾아 나선 길이다. 팔조령 터널을 지나 이서면으로 접어들면, 들녘은 온통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유달리 긴긴 장마와 잦은 태풍이 불어왔지만, 결실의 들판을 바라보면 마음이 살찌워진다.

 

- 이서면 들녘 -

  얼마 전 논공 천왕 당을 다녀온 후 사라져 가는 옛것 중의 민나볼 수 있다면, 한번 나서기로 마음먹은 곳이 금곡마을에 있다는 서낭당이었다. 우리나라가 근대화로 가는 길목 이었던 1970년대 초, “잘살아 보세라는 기치 아래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서낭당, 장승, 솟대, 미륵불, 조산 등을 미신 타파의 일환으로 마구잡이 없애 버렸다.

 

-창녕가는 20번 국도(청려로)에서 바라논 각남면,풍각면 들판 -

  청도 비동당제 천왕기(천왕대), 정월 풍물놀이 당시만 해도 꽤 명성을 떨쳤다는데 지금은 그 명맥조차 끊어진 모양이다. 해서, 그 흔적인 당집이 아마도 남아있지 않을까 나선 걸음이다. 어디를 가도 많은 변화가 있다. 그중에 제일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이 길이 아닐까 한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서면에서 각남면, 풍각면과 멀리 창녕을 갔었는데, 지금은 잘 닦여진 우회 길 말고도 외곽 순환 길이 시원스럽게 달린다.

 

- 금곡리 숲 -
- 문을 닫은? 가게 -

  금곡 숲 공원에 당도했다. 울창한 노거수와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꽃말을 지닌, 붉게 핀 꽃 무릇이 햇살을 머금어 더욱 아름답고 처연 서러워 보였다. 요즈음 시골은 어딜 가나 한적하다. 코로나19와는 관계없이 나이 많으신 부모님들이 고향을 지키는, 사람이 그리운 시대라는 역설적 이기도 하다.

 

-금곡마을 -
-흙 돌담의 화산마을 -
-화산마을 들녘 -
-화산마을 들녘-
-화산마을 들녘 -

 

- 서낭당 -

 

- 서낭당 -

  고즈넉한 돌담의 화산 마을을 돌아내린다. 길옆의 노랗게 익은 다락 뱀이 논 위로 가을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물꼬를 손보는 마을 분에게 물어서 당집이 있는 곳으로 찾아 들어갔다. 마을 뒤편 산기슭, 대나무가 무성하게 앞을 가리고, 등 굽은 소나무 밑동에 왼편으로 꼰 새끼줄이 둘린 옆에, 작은 새멘불록의 집 한 채가 있다. 흙담 돌로 친 당집은 아니더라도 서낭당이다.

 

-기룡재-

  산골 마을에는 일찍이 해거름이 찾아 들고 있었다. 금곡마을에는 임계량(林啓良, 1640~1648)을 추모하고자, 아들인 임건원이 1881년에 중건한 기룡재(起龍齎)를 비롯한, 용암재(龍巖齋/임씨), 유연재(油然齋/임씨), 염수재(염수재/임씨), 화산재(華山齋/박씨), 모효재(慕孝齋/김씨) 등의 재실이 산재해 있을 만큼 명문 세 거지로 자리한 지 오래된다. 주막거리에서 동네 슈퍼로서 이젠, 그나마 문을 닫은 삼거리 가게가 있었던 숲으로 되돌아 나왔다. 돌아서 나온 서낭당도 멀지 않아 쇠퇴하겠지.

 

-금곡리 숲(팽나무)과 재실 -

 그러면 또 하나, 우리의 옛 전통이 사라지고 잃어버리고 만다.

 

<여정 메모>

-언제 : 2020.09.28. () 14:00~18:30

-이디 : 금곡리, 화산리

-누구 : 청산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