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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불국정토 남산(南山)을 가다.Ⅱ


-금오정에서 바라본 배반리 들녘(앞 산봉우리가 형제봉, 뒤 능선 제일 높은 봉이 토함산)-

경주 남산을 일주일 만에 다시 찾았다.

남산이 신라천년을 지켜온 불국의 세계임을 올라와 보면 확신을 가지게 된다.지난번은 동 남산 통일전에서 서출지, 남산리 석탑, 염불사지를 거쳐 봉화골로 들어서서, '칠불암',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을 보고, 이영재에서 오산골로 내렸다.


금번은포석정에서 출발을 시작을 했다. 포석정은 신라천년(56대992년:BC 57~AD935) 의 사직이 후백재 견훤의 침공(928년:경애왕5)을 받아 나라가 멸망했다는 한(恨)서러운 곳이기도 하다.


1969년11월에 개통된 남산 순환관광도로(통일전~포석정)를 따라 오르다 만나는 ‘윤을곡 마애삼존불’과 해목령 못미처 상실된 절터를 둘러 ‘능비봉 오층석탑’에서 ‘금오정’을 올라 부엉골로 내려오기로 했다.


윤을곡 삼존불은 ‘ㄱ’ 자 바위 면에 석가모니불과 두 분의 약사불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순환도로는 산비탈 물길 통로를 보수하고 있었다. 폐 사지를 가기전 오른편 능선 넘어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곳으로 올랐다. 붉은 사암에 선각으로 좌불이 새겨져 있었다.


남산은 이처럼 골골마다 부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복숭아밭으로 변한 폐 절터를 돌아 부흥사로 갔다. 절 입구부터 정갈하게 비질을 하여 놓은 산사는 조용했다.


“스님, 혹 스님께서 이토록 깨끗하게 마당을 쓰셨습니까?”

스님은 빙긋이 웃으시기만 하셨다.


능비봉 오층석탑은 남산의 용장사지 삼층석탑과 같이 자연바위를 기단삼아서 복원된 불탑으로서 비슬산 대견사지 삼층석탑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 같았다.


포석곡(능비봉) 오층석탑에서 금오정을 경유, 당초 계획보다 먼 거리인 금오산(469m)으로 해서 삼릉으로 변경했다. 통일전 옆의 무량사 뒷 능선으로 아래 국사골에, 최근에 복원한 삼층석탑이 아련히 보였다. 상사바위를 둘러서 사자봉을 거쳐 남산 8경 중의 한 곳인 ‘부석(浮石)’으로 내려갔다.


부석에서 중식을 한 후, 순환도로변의 ‘대연화대’를 찾으려고 동분서주 했으나 찾지를 못하고 금오산 정상으로 향했다. 금오산은 남산의 고위봉(496m) 다음으로 높은 봉으로서 약수골, 비파골, 금오정, 상선암으로 갈라지는 중심부에 위치해, 많은 사람들이 부딪기는 곳이다.


상선암으로 내려서는 우측 암벽의 ‘석가여래좌상’ 부처님은 금세라도 속세로 나올 듯 얼굴을 내밀고 계셨다. 상선암의 부엌 뒤편 어디에 있다는 ‘선각보살상’의 흔적도 살폈으나 그마져 허방을 치고 말았다.


어둠사리에 걸음을 재촉했다. ‘선각마애불’과 그 아래 ‘경주삼릉계석불좌상(보물 제666호)’을 지나면 다시 길목의 ‘선각 육존불’과 ‘마애관음불’을 만난다.


남산 여정(旅程)의 마지막은 망월사 연화탑과 삼불사 다층석탑을 둘러‘배리삼존불’을 보고서. 포석정으로 달렸다.아침의 여유로운 출발이 과욕 탓으로, 여섯 시간 반이란 긴 시간을 헤맨꼴이 된 셈이었다.


남산은 언제나 아쉬움을 않고 돌아선다. 오늘도 ‘대연화대’와 상선암의 ‘선각보살상’을 끝내 남겨두고 왔으니 말이다.


<산행 메모>

-일 시 : 2008. 9.28.(일) 10:00~18:30

-장 소 : 남산 일원(포석정-금오정-금오산-삼릉-포석정)

-동 행 : 함께하는 아름다운 이들(황 국장내외, 청산 내외)


-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도유형문화재 제195호.)



-부엉골 마애여래좌상.



-복숭아 밭으로 변한 상실된 절터.



-부흥사 대웅전 뜨락의 석탑(옥개석)부재.



-부흥사 삼성각 벽화.



- 능비봉(포석곡)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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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암 마애좌불(도유형문화재 제158호.).



-삼릉계곡 선각 마애여래좌상(도유형문화재 제159호)



-내려오는 길목에서 만난 다람쥐 한마리.



-삼릉계곡 바위밑의 촛불(위험천만한 행위.)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삼릉계곡 관음보살상(도유형문화재 제19호.)

-망월사 연화탑

-배리 삼존석불(보물제 63호)

-삼불사 다층석탑

-동부 사직지대 고분 1.

-동부 사적지대 고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