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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부도(浮屠)10.(영지사)



-영천 대창면 용호리 영지사 부도군-

영지사(靈池寺)로 갔다.

구룡산 오지 깊숙이 자리한 영지사 입구의 부도는 너무나 아름답다.

현판조차 없는 일주문 오른편에 나란히 서 있는 다섯 기의 부도 하나하나는 산위로 살포시 내려않는 저녁 햇살같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개 짖는 소리에 인기척도 없다. 요사 채 안의 도란거림 마저도 이어졌다 끊어지면서 적막감에 파묻혔다. 전통사찰로서 범종각과 대웅전이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오랜 풍파를 견딘 모습의 건물은 한층 더 격이 높은 가치를 풍기고 있어 보였다.


겨울바람 한 자락이 대웅전 돌담을 스쳐갔다. 합장 삼배 후 죽담을 건너 명부전 문을 살며시 여니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기척도 없이 찾은 중생을 맞았다. 돌담 아래로 절구와 함께 아무렇게나 쌓아 올려진 탑을 돌아서 다시 일주문 앞 부도 곁으로 내려왔다. 다섯 분 스님의 연화세계인 부도는 한 기 한 기의 다듬어 온 지극 정성의 손결만큼이나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었다.


부도 바로 옆 개울에는 백악기 초기 암석에서 화석으로 발견된다는 아구아노돈 계통의 공룡발자국이 있었다. 음지쪽이라서 계곡은 꽁꽁 얼어 있었으나, 청석 너럭바위에는 밥그릇을 엎어놓은 크기의 발자국 티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름다운 부도가 있는 영지사를 내려서면 겨울잠을 자고 있는 저수지 옆에 도잠서원이 있다. 빗장이 굳게 걸린 담장너머로 돋음 발을 하고 드려다 보았다. 예전 선비들의 글 읽는 낭랑한 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 했다. 저수지 아래 서원으로 오르는 둔덕 길섶에는 깨어진 하마비(下馬碑)가 세월의 풍상을 겪으면서 서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자인초등학교 화단에 너부러져 있는 탑을 둘러보고, 계정 숲 ‘한 장군’ 묘소 입구에 세워져 있는 30여기의 현감 선정(공덕)비를 둘러봤다. 자인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자인현(慈仁縣)으로 불리어오다 1895년(고종 32) 자인군으로 승격되었으나, 1913년 일제에 의해 군이 폐지되고 일부 지역은 경산군에 편입되어 현재의 경산시로 이을 만큼 긴 역사를 가진 고장이다. 그 오랜 기간만큼이나 고을을 다스렸던 목민관의 비가 많음도 당연할 것이다.


작년에 개통된 외곽도로를 타고 국도 25호선이 달리는 경상병원 사거리에서 바라본 경산의 진산 성암산을 쳐다보았다. 하루해가 막 산을 넘어간 뒤라서 붉은 노을이 아직 걸려 있었다. 그 아래 신 부산 고속국도 위로 차량들이 힘차게 질주하고 있었다.


눈길은 가마득한 시절에 올라 보았던 성암산 중턱의 용(龍)굴을 더듬어 금성산 지능으로 따라 가고 있었다. 금성산은 높이는 얼마지 않지만 산성 터가 아직도 자리하고 있는 경산의 명산(名山)이기에 한번 올라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짐해 본 곳이기 때문이다.


차량 행렬이 붉은 전조등을 밝히자, 가로등 불도 하나 둘 켜졌다.


<여정 메모 >

- 일 시 : 2009.1.3(토)12:00~17:30

- 곳 : 영천 대창면 영지사

- 함 께 : 청산내외


- 영지사 부도 1(해월당 지학 대사(海月堂 智學 大師) -


- 영지사 부도 2(?) -


- 영지사 부도 3(?) -


- 영지사 부도 4(?) -


- 영지사부도 5(?) -

- 영지사 전경(부도,일주문, 범종각)/대웅전과 범종각;문화재자료 제207호) -

- 영지사 석탑 -

- 공룡화석이 있는 계곡 -


- 아구아노돈 공룡 화석 발자국 -

- 도잠서원(문화재 자료 제100호) -

- 도잠서원 아래의 용호리 전경 (오른쪽 길 옆에 전신주 사이의 하마비) -

- 신광2리에서 바라본 경부고속 철도 -

- 영천 대창면 소재지 전경 -

- 자인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석탑 -

- 자인 계정 숲 입구의 한장군 묘소 전경 -


- 한 장군 묘소 입구의 각종 비석 -


- 현감 변후유 애민 선정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