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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고향(故鄕)은 언제나 그리움이다.



- 고향은 언제나 그리움에 꿈을 꾼다.(새못에서 바라본 저녁노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 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은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이하 생략~


충북 옥천이 낳은 정지용 님의 시(詩) <향수>(鄕愁)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던가? 자기가 나서 자란 고향이라던가? 그리움의 대상은 천차만별이겠지만 고향은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 아닐까한다. 특히 불혹이 넘은 사람으로서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자랐다면 부인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고향하면 언제나 설레는 마음부터 앞서진다. 어릴적 그 시절이 파노라마가 되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올해는 윤달이 끼여서 추석이 예전보다 좀 늦지만, 설과 함께 추석은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그럴 때마다 고향을 찾는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등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는다. 부모, 형제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리움을 찾아나서는 곳이 고향이다.


추석이 다가오면 조상의 산소에 벌초를 한다. 작년에 너무 무성한 풀로 인해서, 금년은 형제들이 모여서 예비 벌초를 한번 하기로 하고 모였다. 찌는 듯한 날씨 속에 형제들이 함께 말끔히 정리를 하고 뒷숲 방천에서 휴식을 취했다.


우리 밭 너머로 용산(龍山:435m)의 자태가 우뚝해 보였다. 방천 둑위로 늘어선 버드나무, 팽나무, 느티나무들이 미산(美山)이라는 마을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휴식처로 가꾸어져 있었다. 그 옛날에는 소와 말(장날)들이 쉬는 자리였다. 그 나무에는 귀청이 떨어져 나갈듯이 매미가 노래하고, 방천둑 아래 맑은 도랑에는 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니던 곳이다. 눈을 들어 바라다 보이는 앞산 무등골에는 소를 먹이면서 오후 내내 뛰어다니던 놀이터였다. 지금은 산림이 울창해 길조차 가늠하기가 어렵게 보인다. 가까운 곳에서 동무들의 웃음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정지용 님의 마지막 시(詩)구절처럼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해 그늘 녘에 용산(龍山)을 한번 올라 가 보기로 했다. 형제들이 학교(초․중)소풍날 한 두 번씩은 올라가 본 곳이다. 어릴땐 아무런 의미도 모른 체 산성 터(흩어진 돌무더기)가 있고, 샘터(무지개 샘)가 있는 주위의 너른 풀밭에 보물 찾기도 하고 하루를 보내고 오곤 했던 곳이다.


성터로 올라가는 길은 세면포장의 임도 길로 8부 능선쯤 까지 차로 올라가니 <용산산성>(龍山山城:기념물 제134호) 동문에 닿았다. 안내 글에 의하면 남북 장방형의 퇴뫼식산성(山頂式山城)으로서 신라시대의 축성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일부 복원을 하였으나 길을 따라 들어가 보았으나 무너진 돌 더미들만이 이곳이 옛 산성터임을 짐작케만 했다.


무지개 셈터는 물이 용출되고 있었다. 어린시절 가뭄이 심한 해에는, 누군가가 묘를 섰다고 면민(面民)들이 산을 헤집고 다니고, 기우제를 지내던 기억도 생각난다. 오랜만에 양철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보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무속 신앙의 기도처로 변질되어지고 있어 보였다. 언젠가 고증에 의한 역사의 유적지로 새롭게 단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내려왔다. 무려 40년이 넘은 세월이 흐른 후에 올라본 곳으로서 감개가 무량했다.


산성을 내려와서 반룡사로 올라갔다. 삼성현의 고장이 배출한 성사 원효 스님이 신라 무열왕7(661)때에 창건된 사찰로 고려시대 원응국사(1051~11440)의해 중창되면서 신흥사로 부르다, 조선 인조14(1641)때에 <반룡사>(盤龍寺)로 불러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한다. 몇 해 전에 가본 것과는 달리 사세가 엄청난 규모로 확장되어 있었다. 옛 사지 터 유물과 왕재를 오르는 등산로 길도 정비가 되어 있고, 외롭게 서 있는 부도(종형) 위로 서산의 초승달이 어렴풋이 내려 비출 즈음 반룡사를 내려섰다.


고향(故鄕)은 언제나 꿈을 꾸는 곳이다.


<여정 메모>

- 일 시 : 2009.8.23.(일) 10:30~19:00

- 곳 ; 고향 일원(산소, 용산산성, 반룡사)

- 함 께 : 10명(5형제자매들)


- 자인 시장 입구 -


- 자인시장(어물전) -


- 자인시장(옷 가계) -


- 자인시장(채소 전) -


- 자인시장(이동 다방) -


- 고향 집 거실의 그림(안나푸르나봉 풍경) -


- 고향 뒷숲 우리 밭 너머로 보이는 용산 전경 -


- 고향 숲 원두막에서 중식을 하고나서 -


- 용산산성( 동문 입구) -


- 용산에서 바라다본 미산리 전경(붉은 집 건너 마을) -


- 용산의 무지개 샘 -


- 무지개 샘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올리는 청산 -


- 감 못에서 바라본 용산 전경 -


- 반룡사 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사찰 경내 -


- 반룡사 석조유물 -


- 반룡사 경내에서 -


- 반룡사 부도 -


- 하늘에 걸린 초승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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