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국립박물관 뜰의 <정도사지 오층석탑>(보물 제 357호) -
박물관!
한마디로 그 지역의 역사적 유물, 예술품, 그 밖의 학술적 연구사료 및 자료를 수집 보관 또는 진열하여 지역민의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곳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또 한편으론 그 나라(지역)가 성장해온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대구 국립박물관은 1994.12월7일 개관 후, 지역 시민들의 문화적 삶의 질에 많은 기여를 하여 왔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동안 너 댓 번 밖에 들리지 못했던 것 같다.그 대표적인 것이 “페르시아 전”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순국100년 “안중근”전이 4월 다음 달까지 전시되고 있었다.
새삼스레 박물관 이야기를 들추어내는 것은, 박물관에 대해서 특별한 조예나 새로움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올 해로 15년째 회원을 모집하는 “박물관대학” 강좌 개설이 새벽부터 열기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여 있어서이다.
불그스름한 가로등 불빛마저도 잠든 곤한 새벽녘부터, 박물관 뜰 아래로 한 두 사람씩의 발자국들이 소리소리 없이 길게 줄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십 일곱”
하고 외쳤다.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아마도 20분경쯤에 도착해서 선 자리의 순번이다. 그새 사람들은 박물관 정문 앞 “정도사지오층석탑”(보물 제357호)이 서있는 곳까지 늘어져 있었다. 그만큼 ‘박물관대학“강좌의 장수를 대변하고 있어 보였다.
아침 6시!
그제서야 굳은 빗장의 강당 문이 열리고, 줄지어 선 사람들에게 예비 번호표 룰 배부하면서 입장을 시켰다. 선착순 320명을 선발한단다. 꼭 이런 방법 외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주최 측의 말로는 온갖 방안을 다 강구 해보았지만, 막무가내 식의 유착의혹을 불식시키기에는 별반 도리가 없다고 했다.
강당에서 다시 9시가 될 때까지 3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접수마저도 직원들의 출근시간에 맞추어 해야 만이 이설을 막을 수 있다 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IT강국의 국민답게 인터넷이나(방문)접수 후, 무작위 추첨을 통해도 될 수 있을 터 인데......, 밤을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당첨이 되어야 하고, 그러면서 내 눈으로 확인해야 만이 공정하다고 믿는 풍조 때문이다. 우리모두 진실된 삶을 살아오지 못함 때문이다.
맨 처음 당도한 이들은 새벽 2시부터 기다렸다 했다. 내 앞의 사람은 근처 찜질방에 있다 왔다했다. 나만 하드라도 03시 조금 지나 서둘러 나와 04시부터 09시까지 장장 5시간을 기다렸으니 말이다. 등록을 하게 되어서 다행스럽기도 했으나, 한편으론 서글프기 까지도 했다. 새로운 문화를 좀 더 안다 한들..... 그것이 뭐 그리 대한한 것이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만이 하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 아는 만큼 보인다 했는데 얼마 만큼이나 보일런지......?”
<여정 메모>
- 일 시 : 2010.3.8.(월)04:00~09:20
- 곳 : 국립대구박물관(해솔관 앞)
- 함 께 : 2명(임 관장, 청산)
-어둠 속에서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
-예비 번호표를 받고 접수를 위해서 모두들 얼심히 기록 -
- 그후 대강당에서 지루한 시간의 기다림을 .... ._
- 드디어 5시간을 기다린 후의 접수에도 환희가.... _
- 안중근 순국 100주년 특별 기념 포스터(국제보상운동, 동양평화로 태어나다) -
- 1954년 대구 그 아련한 추억의 모습 (대강당 옆 벽면에 전시된사진) -
- 그때 일상의 한 모습 -
- 교통 정리 하는 모습(어릴적 본 기억이 새롭다) -
- 그 시절의 한 모습 -
-그 시절의 한 모습 -
- 통일의 염원은 그 시절에도 -
- 그래도 봄은 기지개를 켜고 (아파트 단지내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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