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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2023년 서울 여행 2-1 – 두물머리 양수리

 

- 두물머리 풍광/가운데 섬을 중심으로 좌/남한강.우/북한강 -

1. < 두물머리 양수리 : 첫째 날, 23.09.27() >

올 추석 연휴는(9.28~10.3) 임시 공휴일을 포함하여, 6일간으로 온 나라 안이 덜썩거린다. 그동안, 코로나193년여간이나 비대면 명절을 보내다 해제와 함께 맞는 명절이라서 인지 모른다우리 가족도 이번 추석은 서울에서 보내려고 일찌감치 정하고 27() 점심 후, 곧바로 경부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내비 게이션의 추천 길은 중부내륙을 휘저으며 양평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양수리 두물머리 유원지를 잠시 들렀다.

 

- 남한강/양수리 -
- 남한강 풍광/양수리 -
- 두물머리 공원 /양수리 -
- 두물머리 카폐/양수리-
- 카폐/양수리 -
- 두물머리/로이도 한 몫 -
- 남한강 두물머리 보호수 -
- 남한강&nbsp; 두무ㅜㄹ머리 고인돌 -
- 남한강 두물머리 보호수 -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 한강을 이루는 합수 지점이다. 강폭이 생각보다 넓다. 해거름 녘의 양수리의 풍광은 황홀하고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한국 최고의 비경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감동을 불러오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 두물머리 표지석 -
- 두물머리/남한강의 가을 저녘나즐 -

2. <서울 효창공원, 삼각산 길상사 : 둘째 날, 23.09.28() >

 

; 서울 효창공원 -

경의선 철길 숲길을 걸어 용산 용문 전통시장 안의(창성옥) 해장국으로 둘째 날 아침을 맞았다. 서울 효창공원은 조선 후기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를 비롯한 왕족들의 무덤인 효장원(서삼릉 이전) 자리인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애국지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안중근/가묘, 백범 김구 등)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 경의선 철길 숲 공원 -
- 창성옥/해장국 집 -
- 목물과 가마솥/70년 전통 창성옥 벽화 -
-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 -
- 백범 김구 선생 기념관 동상 -
- 백범일지/김구 기념관-

삼각산(북한산, 837m) 길상사로 갔다. 1987년 공덕주 길상화 (김영한) 보살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동하여, 음식점 대원각(부지 7,000, 건물 40)을 청정한 불도량으로 기증하여 19956월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 19972, 맑고 향기로운 근본 도량 길상사로 변경 등록한 성북동의 수려한 계곡에 자리하고 있었다.

 

- 성북동 길상사 가는 길목 -
- 극락전 -
- 법정스님&진영각 -

산사는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극락전을 들러서 합장했다. 경내는 울창한 수림과 맑은 물이 작은 폭포를 이뤄 흘러내렸다. 법정 스님의 유물관을 들렸다. 통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와 한 줌의 흙으로 되돌아간 스님의 유골은 담장 아래 작은 꽃밭에 뿌려져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삶을 생각해 본다.

 

-극락전 삼존불 -
- 법정스님 의자 -
- 길상보탑 -
- 길상사 일주문 -

3. < 경복궁, 경희궁, 덕수궁: 셋째 날. 23.09.29() >

 

- 근정전/경복궁 -
- 근정전/경복궁 -
- 근정전/경복궁 -

추석날이다. 1395년 창건된 조선 왕조의 법 궁 경복궁으로 간다.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1711번 시내버스를 탔다. 우리 가족 4명이 첫 손님이다. 서울역사 문화관(구서울역 본관), 숭례문과 광화문 광장을 지나 경복궁 정류장에 내렸다. 아침나절부터 관광객들이 경복궁으로 밀물처럼 밀려든다.

 

-일출/ 남산타워 -

국립고궁박물관 옆으로 들어가 홍례문과 영제교를 지나면 품계석과 정전인 근정전이 근엄하게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행지답게 내외국인이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사정전을 지나 향원정으로 갔다. 건천궁은 우리 근대사의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다. 일본인 자객에 의해 국모인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장소이다. 경회루를 둘러 경복궁을 나왔다

 

- 경복궁 가는 길 -
- 근정전 내부 관람/ 관광객 -
- 근정전/ 용상 -
- 근정전 /임금 자리 -
- 너무 더워서 /휴식을 위하여 -
- 사정전/경복궁 -
- 경복궁 전각 -
- 향원정-
-건청궁 -
- 건청궁 곤녕합/명성황후 내실? -
- 자선당 기단과 주춧돌/일본 반출 반환 유물 -
- 경회루-

경희궁지로 간다. 종로/경복궁 파스타 맛, , 까사 이태리아(CASA ITALY)에서 중식을 하고 걸었다. 사직단을 지나고 성곡 미술관과 아산 정책연구소를 지나, 경희궁지로 올라 태령전을 왼편으로 끼고, 숭전문을 들어 숭정전을 살폈다.

 

- 까사 이태리아 -
- 종로 적선동 골목 -
-성곡 미술관 -
- 경희궁 전각 -
- 태령전-

경희궁은 “1620(광해군 12)에 완공 후, 인조반정으로 등극한 인조가 정사를 보았으며, 효종부터 철종에 이르는 10여 명의 임금이 거처한 곳이다. 일제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궁궐로서 1988년 복원 작업을 시작 자정전, 숭정전, 숭정문등 1차 복원공사를 마치고 시민에게 공개되었다한다”(다음 백과)

 

- 숭정전 -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을 나서서, 새문안 극장(소극장 복원 개방 매표소, 매점, 영화 포스터, 극장 내부, 필름. 영사기 등) 이 있는 골목길에서 만나는 학교 앞 분식집, 서대문 여관 등의 아기자기한 옛 모습을 보고 정동 길로 내려섰다. 덕수궁으로 가는 길이다.

 

- 경희궁 정문 -
- 종로 평동 골목 -
- 매표소 직원/50환 주세요~ -

근대유산 1번지 정동의 주캐나다 대사관저 앞길에 600년 회화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다. 2003년 캐나다 대사관 신축 당시 나무의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지지대를 세우고 우물을 확장하는 등, 대사관의 정성을 받고 자란 나무라 한다.

 

- 정동 회화나무/보호수 -
- 정동길 -

덕수궁은 1592(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월산대군 저택과 주변 민가를 여러 채 합하여 시어소로 정하여 행궁(정릉동 행궁)으로 삼았으나, 광해군이 즉위하여 창덕궁으로 옮긴 뒤 경운궁으로 불렸다. 그 후 1623년 인조반정,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1897년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 1904년 덕수궁 대 화재,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로 규모가 축소되고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이름 또한 바뀌게 되었다 한다. (덕수궁 관리소)

 

- 덕수궁을 찾은 관광객 -
- 함녕년 정문 -

덕수궁 대한문 앞 광장도 사람으로 덜 끌었다. 함녕전과 덕흥전을 돌아 석어당(인조반정), 즉조당(인조 즉위)을 지나,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으로 해서 느린 걸음을 재촉했다. 지난 2월의 찾은 창덕궁과 함께 조선왕조 5백 년의 숨결을 작게나마 느꼈다. 석조전의 대한제국 역사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관람은 숙제로 남겼다.

 

- 석어당 -
-적조당 -
- 와풀 줄서기/인내의 시간&nbs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