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황금가면

천년 신라의 원력 - 경주 탑을 순례하다

-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립경주박불관 야외 광장 -

경주 나들이에 나섰다. 지난달 말경, 동궁과 월지 일대 연꽃단지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월지의 아름다운 야간 경관을 보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천년 신라의 원력이 된 불국토의 혼, 탑을 찾아가는 길이다.

 

- 탑 / 국립경주박물관 야외광장  -

 

<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국보 제236) > 

 

토함산 동쪽기슭, 문무대왕면 장항리 대종천 계곡 넘어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장항리 오층석탑을 찾아갔다. 1923년 일제 강점기 도굴꾼에 의해 파괴된 서 오층탑은 복원되었지만, 동탑은 부재가 산산조각이 나서 뭉그러진 옥계석만 덩그러니 얹혀있다. 그 옆으로 연화대좌가 놓인 금당 터가 풀 더미에 파묻혀 있다.

 

- 장항리 동/서 오층석탑 -
- 장항리 동 오층석탑/ 1층 몸신의 부조 -
- 장항리 서 오층석탑 -

지난 폭우에 대종천 계곡이 많이 훼손되어 중장비가 산사태지와 계곡을 복구하느라 분주 했다..

 

- 장항리 대종천 복구 공사 중 -

 

<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 >

 

장항리사지를 내려와서, 낭산(99.5m) 북동쪽 자락의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있는 곳으로 갔다. 오래전 두어 번 들른 곳이지만 올 때마다 다른 느낌이다. 692(효소왕1)부터 706(성덕왕 5)에 건립되었다 전한다.

 

- 황복사지 삼층석탑 -

황복사지 삼층석탑은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고선사지 삼층석탑에서, 불국사 석가탑으로 이어지는 변천 과정의 특징을 가지는 탑이라 한다. 물결치는 녹색의 구황 들녘 너머로, 진평왕릉, 전 홍유후 설총 묘, 보문동 연화 무늬 당간지주 등의 문화재가 널려있다.

 

- 구황동 들녘 -

 

<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 >

분황사 창건 당시 세워졌으며,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이다. 원래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3층만 남아있다. 1층 탑신 4면에 각각 감실이 만들어져 있으며, 감실 안에는 불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 분황사 모전석탑 -

문에는 인왕상이 동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기단, 네 귀퉁이에는 석사자상이 배치되어 있다. 옥계 부는 전탑 특유의 구조인 상하에 층 단이 있다. “(다음백과)

 

- 감실 문지기(?) 인왕상 -
- 신라시대 우물 인 분황사 석정 -

이른 시간 임에도 어린이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담장 옆 종각에 안치된 범종을 1타 했다. 에밀레종이 아닌데도

애 밀레~~ “

하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 분황사 범종 -

 

<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 >

 

국립 경주박물관 야외 뜰에 있는, 남북국시대 신라의 삼층석탑이다.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암곡리 고선사 터에 있었던 탑을, 1975년 덕동댐 건설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세웠다.  

 

-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립경주박물관; -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초기 석탑의 제작 방식인 여러 돌을 짜 맞추어 몸돌과 지붕돌을 조합했다. 이는 인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에서 볼 수 있듯이, 탑의 규모가 크고 높아서(고선사지 10.2m, 감은사지 13.4m) 하나의 돌로서 만들 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짜 맞추기 방식으로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 국립경주박물관 야와 광장 -

황복사지 삼층석탑, 나원리 오층석탑 등을 거치면서 크기는 작아지지만, 제작 방식은 하나의 석재로 하나의 부재를 만드는 방식의 변천 과정을 거친다. 이는, 통일신라 중기에 세워진 불국사 삼층석탑에서 완벽한 미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고선사지 삼층석탑도 전환점의 특징을 지닌 탑이라고 한다.

 

-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립경주박물관 -

 

<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국보 제39) >

 

형산강 금장교를 지나 현곡면으로 들어섰다. 지금은 폐역이 된 서경주역을 지나, 금장리 교차로에서 경주시 형산로를 따르지 못해, 화랑중학교, 나원 초등학교 앞으로 한동안 뱅뱅 돌았다.

 

- 나원리 오층석탑 -

나원1리 마을회관 못 미친 나원천 람코(회사 명칭?) 삼거리에서 탑 골 좁은 농로를 더듬어 오르면 나원리 오층석탑(높이 9.7m)이 산자락에 우뚝해 보인다. 이층 기단 위에 오층의 답신 부를 구성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나원리 오층석탑 가는 길목의 들녘 -

경주 삼기팔괴 중의 하나인 <나원백탑>으로 불릴 정도로 석탑의 빛깔이 빼어나게 하얗다.”(나무위키)

 

- 나원리 벡탑 -

 

<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국보 제40) >

안강읍 옥산서원과 독락당을 품은, 자옥산(569.9m)과 도덕산 (702m) 아래 정혜사 터에 있는 13층 석탑이다. 일찍이 도덕산 산행 때 둘러본 적은 있으나, 세심하게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폭염을 피해 많은 사람이 계곡을 찾아서인지 차량 통행이 어려웠다.

 

- 정혜사지십삼층석탑 찾아가는 길/멀리 보이는 도덕산(좌 2봉) -

이 석탑은 탑신의 층위에 있어 보기 드문 13층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 층에 비해 2층 이상의 탑신부가 일반적인 체감의 비례를 무시하고 줄어든 점이 특이하다초 층 탑신 4면에 감형을 개설한 것과 아울러 기단부의 축조에도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특수한 구조를 보인다. 이 석탑의 각 부 양식과 조성수법을 검토하여 그 건조연대를 추정 해보면 우선 초 층부는 목조 탑파를 모방한 듯한 점이 보이고, 각 옥개석 하면의 층급받침이 3단으로 약화한 것은 시대가 내려옴을 말하고 있다.

 

- 정헤사지 13 층석탑 -

현재 옛 절터의 원위치에 원형을 잘 간직한 채 보존된 이 석탑은 13층이라는 층수와 더불어 기단부와 초 층 탑신의 양식, 탑신과 옥개석이 한 개의 돌로 조성되는 등 통일신라의 독특한 양식을 보이는 특수형 석탑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정혜사지 13 층석탑 -

 

<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국보 제77) >

 

마지막 탑 순례를 위해 의성군 금성면으로 달렸다. 영천 고경면을 벗어나면서 의성으로 가는 28번 국도는 한적했다. 금성산(530.2m)과 비봉산(670.5m) 산행 시 두어 번 들린 적이 있다. 중앙선 기차를 타고 지나면서 먼발치로 보기도 했는데, 그간 열차 내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 소음 벽 설치 때문인 것을 알았다.

 

- 의성탑리리 오층석탑 -

 

금성면 로터리에서 탑리 마을회관 옆 언덕배기에 우뚝 서 있는 탑(9.65m)마저도 눈에 잘 보이지를 않아서 마을회관을 두드렸다.

저기 저것이 탑 아 인교~ 어디서 왔는 디~?”

 어허 조기 소나무 뒤에 숨어 있으니 잘 보이나... 대구서 왔심 더

 

-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

골목을 돌아서 탑이 자리한 소공원 정문으로 들어섰다. 언덕 위에 우뚝 선 탑은 기품이 있어 보였다.  바깥 날씨가 대단했다. 몇 날째,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 기후 온난화는 전 세계적으로 요동치고 있다.

이 탑 또한 신라 석탑의 초기형식을 보이는 석탑으로 초층 옥신은 목조건물을, 옥개석은 전탑을 모방한 특이한 양식을 지니고 있다. 목탑과 전탑 형식을 혼합하면서 전체적으로 전탑적인 외관을 갖췄고, 단층이기는 하나 기단의 형식, 옥신, 옥개석의 형식 및 기단 갑석 상면의 괴임 등이 이른바, 신라 석탑 형식의 방향을 제시하여 모든 신라 석탑의 출발점이 되는 시원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는 탑이다. “ (위키백과)

- 능수화 -

 

< 여정 메모 >

언제:2023.08.05.() 07:00~17:30

어디:경주 일원과 의성군 금성면 탑리

누구: 2(태극권  이동* 회장’,  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