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도동) 문화 마을의 연리지 나무 & 백원서원, 관음사
지난밤(3월 25일. 금) 제주 지역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한다. 특히 한라산 삼각봉 500mm, 윗세오름에는 400mm가 내리고, 강풍으로 인하여 200여 편의 항공기가 회항을 했다 하니, 봄 비 치고는 요란을 떨었다. 대구 지역도 목요일과 금요일에 걸쳐 조금은 내렸다.
1962년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이 있는 ‘도동 측백 문화 마을’로 갔다. 날씨가 저만치 물러가던 봄이 발길을 되돌린 모양 같았다. 바람이 약간은 불어지만 하늘은 맑고 구름이 탐스럽게 피어올랐다. 불로 천변 향산(160m) 벼랑 바위(높이, 100m. 길이, 600m)에 100여 그루의 측백나무(높이, 5~6m)가 자생하고 있다.
도시재생 활력 증진 사업으로 문을 연 ‘도동 측백 문화 마을’ 광장에는 제법 많은 차량이 몰려와 있었다. 자전거 동호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마도 붉은 복숭아꽃이 피어나는 평광동, 둔산동, 부동 옛길을 타고 넘지 않을까 싶다. ‘측백 향 커뮤니티센터’ 왼편 광장 끝머리에 ‘연리지 도동 보호수(당산, 회화나무/120년, 느티나무)’ 가 우람차게 서 있다. 울퉁불퉁한 뿌리, 서로가 부등 켜 않은 가지에서, 동민과 인고의 세월을 함께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백원서원(전귀당 서시립 제향)과 관음사 관음전, 무설전 2층의 법당을 참배하고 내동 마을로 향했다.
내동 마을 안정자나무를 찾아가다
고려 태조 왕건과 백제 견훤 군사가 대 혈전을 벌였던 팔공산 동수 대전에서 왕건이 대패한 파군재를 지나, 공산 댐과 공산터널을 내려서자마자 왼편 마을로 들어섰다. “1919년 4월 26일 밤 10시 팔공산 아래 미대동 청년들이 마을 동쪽 옆 여봉산 올랐다. 미대동의 3·1 운동이다”(정만진. 독립운동의 성지 대구). 골목 산책을 나온 연로하신 분의 말이, 안 정자나무가 있는 내동 마을이 아닌 미대동으로 잘못 들어왔다 했다.
내동(옥정)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 골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그만큼 팔공산 자락의 품이 넓고도 깊었다. 안 정자 느티나무는 멀리서 보아도 그 기개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웅장한 크기(높이 15m, 둘레 7.3m)에 압도되어 연신, 대단하다는 소리가 연거푸 나오며 두 팔이 하늘로 치켜 올라간다.
안 정자 느티나무 아래에, 비 한기가 세워져 있다. “추산 공 유적 안정자 비 ”다. 고려조의 명현 안유 선생의 후손 추산 안황이 애호한 정자라고 하여 안정자라고 칭하며, 이 비가 세워져 있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골짜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돌아 나왔다. 봄이 완연히 내려앉고 있었다.
“이충사 유허비”의 도남재 & 당산나무
상전벽해란 말이 있듯이, 수 년 전만 해도 도심 속의 시골 냄새가 풍겼던 연경동 일대가 고층 아파트의 신도시로 변신을 했다. 중심 상업 지구에는 문화 공간도 넘쳐 난다. 파군재에서 동화천, 화담산으로 이어지는 4차 순환 도로가 이달 말, 전 구간 개통이 되면 더욱 활기를 띠게 되리라.
무태동에서 국우 터널을 지나 도덕산(660.7m) 아래 자리한 도남동으로 올라간다. 도남동 또한, 공공주택단지로 개발되고 있어서 연경동 못지않게 변화의 물결에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도남 저수지 아래 도남2동 본 마을과 광대 골 곤산지 · 응애산 가는 갈림 길목에 당산 느티나무(수령 250년, 수고 13m, 가슴높이 나무둘레 4.5m)가 우뚝 서 있다. 얼른 보아도 기품이 있어 보인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당제를 지냈다고 하고, 줄기가 여근처럼 생겨 할매 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다.
도남 저수지는 더없이 넓고 맑은 물이 가득했다. 도남1동 마을 입구 산비탈에는 도남1동 당산나무가 서 있다. 그 아래에 시멘트 단이 만들어져 있다. 당산은 길 융화복을 함께하는 마을의 수호신이다. 도남 슈퍼를 지나 도남1동 경로당 옆 도남 재로 올라갔다.
“도남 재는 정선 전 씨 41대 조인 고려 개국공신 충렬공 전이갑, 충강공 전의갑 장군의 팔공산 동수전투 시 순절한 행적을 기리기 위한 ‘이충사’ 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그 뒤 ‘이충사 유허비’ 옆 자리에 400년 전, 입향조 전민련, 그의 아들 전사헌을 제향 하는 재실로서, 1910년대에 중수한 앞면 3칸 측면 2.5칸 팔작지붕 건물이다. “이충사 유허비”의 비문은 이황의 종손 이충호가 짓고 최종응이 섰다 한다.“(풍경 송은성, 도남동 문화유산)
어느 해 봄날에 찾아들었는지 모르는 제비집이 덩그러니 얹혀있다. 대청마루엔 제비 똥이 말라붙어 있었다. 부실한 문화유산의 관리가 참으로 안타까웠다.
<여정 메모>
언제:2022.03.26.(토) 11:30~16:30
누구:2명(청산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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