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마지막 날 호텔을 나선다. 들어올 땐 길게 느껴졌던 날들이 후닥닥 지나갔다. 지방도 1139번으로, 한라산을 남북으로 이어주는 제2 횡단 도로인, 종전의 1100도로를 타고 공항으로 갈 예정이다. 가는 길목의 1100고지 휴게소와 맞은 편 1100고지 람사르 습지를 둘러보고 넘어가서는 항몽 유적지로 가볼 참이다.
항몽 유적지는 고려 무신정권 시대인 “700여 년 전, 몽골의 침략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궐기한 마지막 항몽 세력인 고려 삼별초가 항쟁하다 장렬하게 순의 한 유적지다. 고려 조정이 몽골과 강화를 맺자, 이에 반대하는 독자적 정부를 세워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겨, 고려·몽골 연합군에 항거하였다. 그러나 패한 후 김통정 장군을 중심으로 한 삼별초가 이곳에 항파두리성을 쌓고, 고려·몽골 연합군과 대결했던 최후의 항쟁지로, 사적 제39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안내 글.
새로 복원된 항파두리 토성으로 내려갔다 올라와, 순의 문을 들어서서 항몽순의비에 묵념을 했다. 기념관 내에는 대형 벽화로 결사의 비장한 모습들이 재현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유적지에서 발굴 출토된 기와 조각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발굴지는 외성과 내성으로 쌓아짐과 함께 궁궐의 터까지 남아 있었다 한다. “그날 하늘은 파랗고, 땅은 붉었다. 그리고 자당화는 고왔다. 1273년 4월”
호텔을 나서 1139번 도로에 올라섰다, 왼편 길머리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법화사 지를 찾아갔다. “법화사 지는 신라 시대의 절터로서 1971년에 제주도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어있다. 또한, 법화사는 신라 때 장보고(張保皐)가 창건했다고 한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 존재한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법화사는 12세기∼15세기에 제주도에서 번창했던 절이다”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청>
또한, 법화사는 제주 4.3 사건시기 소개령으로 법당과 요사채를 비우고 부처님을 모시고 하원 마을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한다. 1948년 10월 소개령 이후 법화사는 전소되었다. 1952년 한국전쟁 때, 법화사 경내는 육군 제3 숙영지로 사용되면서 재차 허물어지고, 대웅전 자리는 숙영 본부로 사용하고 경내의 논을 메워 연병장으로 사용했다 한다. 현재의 대웅전, 구품연지, 구화루, 백련당은 1982년 발굴과 함께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 한다.
대웅전을 들렸다가 구화루와 연지를 돌아 나왔다. 사찰의 규모는 원주에 있는 폐사지인 법천사지, 거돈사지, 보령의 성주사지, 서산의 보원사지, 못지않은 너른 품을 지니고 있었다. 12세기~15세기 제주도 3대 사찰의 중에 한 곳이었음이 명약관하 해 보였다. 하지만 폐사지의 흔적을 한곳이라도 체험하지 못한 우둔함을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찾아보고 싶은 곳이다.
제주의 오늘은, 우리나라 제일의 관광지이면서 휴양지로서 많은 사람이 찾고 사랑받는 곳이다. 그러나 세월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사색당파의 유배지로서의 한과 끝임없는 외세의 침략 속에 피폐를 입었다. 한편으로는 민족상잔의 소용돌이에 4.3 양민학살의 아픔이 지금껏 치유되지 못하고 있는 곳이다.
공항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복잡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거리두기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시간당 30여 편이 뜨고 내리는 비행 편을 고려하면 불가항력 같아 보였다. 정부에서 강조하는 일상에서 손 씻기, 마스크 써는 일만이 최고의 방역일 뿐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어둠이 내려앉은 공항 활주로를 힘차게 날아오른다. 기창 밖으로 제주 시가지의 아름다운 불빛도 따라 오른다.
< 그 뒤의 일정~~ >
< 이호 테우해변과 해안도로 탐방 : 14:20~14:30 >
● 세찬 바람에도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은 기쁨을 만끽 중.
바닷가로 나서는 걸음에 모래가 태풍처럼 몰려와서 쫑쫑 되돌아옴.
< 용두암 및 삼성혈 탐방 : 15:00~15:40 >
● 전설에 의하면 용 한 마리가, 한라산 신의 옥구슬을 훔쳐 달아 나다 화살을 맞고 몸은 물속에 머리는 하늘을 향해 굳어버린 모 습이라 한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용왕님이 노하셨나?
●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 년 전 제주도의 개벽시조(開闢始祖)이신 삼 을나, 삼신인 [三神人 : 고을나(髙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 乙那)]이 이곳에서 동시에 태어나 수렵 생활을 하다가 우마(牛馬)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온 벽랑국(碧浪國) 삼 공주를 맞이하면서부터 농경 생활이 비롯되었으며 탐라왕국(耽羅王國)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한 다. - 삼성혈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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