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나절 늦게 집을 나섰다. 계산 성당보다 이른 천주교 대구 대교구 소속 본당으로서,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난 상리동에 있는 새방골 성당을 찾아가는 길이다. 1888년 프랑스 선교사 김 보록(金保祿 Robert Achille Paul. 1853~1922) 신부가 칠곡 신나무 골에서 옮겨와 안착 한 곳이다.
급행 3번 버스는 얼마나 내달리는지, 섬유회관 건너 정류장에 내렸을 땐 정신이 얼떨떨했다. 갈아탄 524번 버스로 서구 관내를 –큰장 네거리, 평리중학교, 평리 광명 네거리,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이현 자동차검사소, 서대구공단 네거리- 빙빙 돌아 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 성서 나들목 방향과 신천대로 밑 새방골 지하차도를 지나서 내렸다. 범물동에서 한 시간가량 걸린 셈이다.
와룡산 동쪽 사면의 상리동은 도심 속의 시골처럼 한적했다. 성당으로 가는 길목은 뜨거운 햇살이 내리비췄다. 저만치 붉은색 벽돌의 성당이 보였다. 입구에서 새방골 성당의 유래 안내 글을 보고, 작은 화단에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성모마리아 앞에 기도했다.
성당의 뜰 안도 너무나 고요하다. 푸름의 산자락 위로 뭉게구름이 떠간다. 금요일이라서 미사 계획은 없는지 성당 안의 문은 닫혀 있었다. 뜰에 세워진 김 보록 신부님의 흉상과 천주교 신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었던 형구 돌 황새 바위를 살펴보았다. 그 옆에는 성지 순례지로 지정된 스탬프가 마련되어 있었다.
성당을 돌아 나와 마을 안 골목으로 무작정 걸었다. 채소밭에는 옥수수랑 온갖 작물이 햇볕에 숨을 헐떡였다. 돌담 옆으로 기와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용산재(龍山齋) 건물이다. 인천채씨(仁川蔡氏) 달서재 선생(達西齋 先生) 채선수(蔡先修)의 頌德을 기리기 위해 갑자년(1924년) 건립되었다 한다. 그간 번창했었던 건물도 쇠락하여 지금은 방 3칸, 대청 1칸의 정침(正寢)만 남아 있다. 세월의 한쪽으로 비켜선 마당에는 풀이 무성하다.
돌아오는 길목에 평리3동 행정복지센터 앞에 내려서 평리동 당산나무를 찾아간다. 윤일 천주교회 뒤편의 산 구릉지에 있는 회화나무 한 그루다. 눈을 들어 쳐다보면 언덕 위에 높다랗게 지워진 윤일성당 건물 위에 두 팔을 벌린 예수님상과 십자가가 보인다.
성당 앞 좁은 길을 건너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빌라 건물 사이로 하늘로 치솟아 뻗은 나뭇가지가 보인다. 생명의 존귀함을 아는 한 의로운 선비의 영혼과 생명을 구해준 선비를 사모했던 여인의 영혼이 회화나무로 탄생했다는 전설을 가진 나무다. 주민들에 의해 당산목으로 보호받고 있다.
당산나무는 마을의 평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다. 나무 둥치에 금줄을 치고 소원을 빌고 치성을 드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해마다 동민들이 함께 제를 올리기도 하는 마을 공동체의 풍습으로 전해온다.
예전에는 지역 곳곳에 당산나무가 있었다. 평리동의 당산나무에 당제를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범물동에 있는 당산나무에도 해마다 당제를 지낸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끝내 올리지 못했다. 고향의 초등학교 가는 “미산교” 끝머리에 있었던 당산나무였던 느티나무 고목이 생각난다. 지금은 고목이 없어진 지 오래된다. 어릴 적 오르내리면서 놀았던 그 나무가 무척 그립다.
<여정 메모>
-언제:2020, 08, 21(금)10:30~14:30
-어디;세방골 성당, 평리동 당산나무
-누구:청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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