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야동 시내버스 종점에서 출발하여, 노곡동 마을을 한 바퀴 돌아서 팔달동(3호선 팔달역)까지 약 11.5km를 5시간 동안 걸었다. 지난번 검단동 압로정과 검단 토성을 찾았을 시, 조야동과 노곡동의 금호강 강변길을 한번 걷고 싶었다. 네이버 지도상으로 3.4km에 51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2시간 정도를 걷는다고 감안하면 여유로운 길목이라서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조야동은 무척 오랜만에 들린 셈이다. 팔달역에서 함지산(284.4m)을 올랐다가 내려온 적이 있었지만 꽤 오래되었다. 11시 30분 범물동에서 출발한 403번 버스는 시내를 휘돌아 꼭 한 시간여만인 12시 39분경에 조야동 종점에 도착했다. 7월 들어 장마로 찔끔찔끔 내리던 빗방울이 그치자 햇볕이 뜨거웠다.
- 김병엽 공덕비 -
“고향의 어려움을 마음으로 실천한 강물 위에 다리 위에...(생략)” 1965년 강 건너 농사를 짓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잠수교를 건설한 김병엽 공덕비에 새겨진 내용이다. 그 안길에 수성 고량주 건물이 있는 골목을 돌아 나왔다. 그리곤 조야초등학교 앞 경부고속국도 조야 다리 밑 굴을 나와 금호강변 산책길로 들어섰다. 강은 뿌연 흙탕물이었지만 유유히 흘러내렸다. 강폭이 넓어서인지 압로정 가던 강변길의 그 사나운 느낌은 없었다. 강 넘어 검단공단 시가지가 펼쳐져 보인다.
조야동과 노곡동을 걷고 싶었던 가장 큼은, 조야동에서 노곡동으로 가는 울산교 굴다리 안쪽 반티산(함지산) 샘골에 있는, 김울산(金蔚山:1858.7.1~1944.8.13) 여사의 송덕비와 노곡동의 수원인(水原人) 선정(禪亭) 백인관(白仁冠 : 1341~1421)의 학덕을 기리는 화암서원(華巖書院)을 둘러보고 싶어서였다.
김울산 여사는 일찍이 지역의 교육 발전을 위해서 큰일 – 희도학교(1900), 명신여학교(1910)설립, 1926년 대구복명여자보통학교 개교, 1928년 재단법인 복명학교 설립 인가 시의 신고한 재산 명세(대지:1,270평, 건물:교실 2동 및 부속건물 420평, 토지:논 97필 48,477평. 밭:1필70평, 1936년 복명학교에 기부한 현풍면 토지 300여 두락(약 200,000㎡), 수재민 구휼미 2천석 등, 2014년 기준 금액으로 약 500억 원 이상 추정) 을 한 분이다. 현 동부 교육지원청 내 “김울산 여사 육영기념상”에 명기되어 있다.
샘골 마을로 들어섰다. “김 울산”여사 송덕비가 있다는 곳이다. 마을 안은 인기척이라곤 없어 적막했다. 골목을 돌아서 담장이 둘러쳐진 제실 안을 들여다본다. 원사재(遠思齎)로 영동 박 씨 제향 공간이다. 여사가 꿈꾸었던 교육 사업의 공을 보아서는 거창한 비각이라도 있어야 할 곳이다. 조야 본동으로 되돌아 걸어가다 다시 돌아와 원사재 골목에서 “김울산 여사 묘소 가는 길 200m”라는 표지판을 보고 들어섰다. 하지만 막다른 길로 산자락을 헤매다가 찾지 못하고 내려왔다.
영남일보(2014.12.10.) <동대구로에서/박진관 주말 섹션 팀 차장> 기고 글에서 본 “전 재산 기부, 혁신 기생, 이재민 구휼에도 앞장서, 말년의 부일(扶日) 행위 빛바래, 김 울산 현창 사업 취소, 그녀에게 술 한 잔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83세 때 일본 미나미 총독 기로 연에서 총독 만세를 불렀던 모양이다. 어찌 공과 허물을 비교하지 않을 수 있을까만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졸업생이 술이라도 한잔 올려야겠다는 비감에 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노곡동 화암서원으로 갔다. 빠른 지름길을 두고 좁다란 골목을 돌고 돌아 찾아갔다. 돌담과 흙담이 쌓아져 있는 골목은 반세기를 거슬러 오른 길목이었다. 그만큼 도회의 때가 덜 묻은 순수함이 남아 있었다. 화암서원 옆에는 함안 조씨 대구 입향 400주년 기념비가 붉은 백일홍 나무에 에워싸여 있다. 그 앞에는 노원재(魯院齎)가 세월을 함께 하고 있었다.
-영모재 가는 길목의 돌담 -
노곡동은 생각보단 무척이나 큰 동네였다. 노곡동 산성(팔거 산성) 아래 함지산 자락이 양안으로 감싸고 그 앞으로는 금호강이 흐르는 길지다. 경주이씨 들의 제실 인 영모재(永慕齎) 가는 길에서, 건너다보이는 우뚝 솟은 태충각(泰忠閣:백촌(白村) 김문기(1399~1456) 선생의 휴허비 각)과 김녕 김씨의 사당과 제실(숭효사, 사성재) 건물은 웅장해 보였다. 노곡 마을을 벗어나 하중도로 내려갔다. 봄날의 노란 유채꽃 대신 가을의 전령사 코스모스가 한두 송이 피어나고 있었다.
노곡로1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대구기도원으로 가는 굴다리를 들어 가본다. 우측 경부고속도로 국도변 산기슭에 “목산 조현욱 선생 순국 기념비”가 있지만, 돌아 나와 황씨 동원각(黃氏 同源閣)을 둘러서 부엉 길을 따라 부엉덤이 마을로 들어갔다. 고추밭 고랑에서 붉은 고추를 솎아내던 연로한 동네 분의 이야기는, 옛날 밤마다 부엉덤이에서 부엉이가 울어대서 부엉덤이 마을이라 불렀다 했다.
관문동(노곡동) 직원교 굴다리로 들어서서, 팔달교를 지나는 칠곡중앙대로 육교를 건너 팔달역에 도착했다. 저 멀리 팔거천 다리 위로 용지행 열차가 들어온다.
<여정 메모>
-언제:2020.07.26. (일) 11:30~118:30
-어디:조야동. 노곡동. 팔달동 걷기
-누구:청산인
* 그 뒤의 일들 *
- 07.29.(수):김 울산 여사 육영기념상/동부교육지원청 탐방
- 07.30.(목):김 울산 여사 상/복명초등학교(범물동)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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