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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강안문화(江岸文化)의 요람 – 금호강 압로정을 가다

- 압로정 -

   압로정(鴨鷺亭)은 강안문화의 산실로 자부하는 지금껏 남아 있는 대구 금호강변의 정자다. 검단동 왕옥산(王屋山 82.5m) 기슭에 병조참판 이영(李榮:1494~1563)이 짓고, 1561(명종 16) 그의 외손 송담 채응린(1529~1584)이 소유정(小有亭:소실)과 함께 강학했던 곳이다. 그 후 정유재란과 더불어 두 번이나 소실된 것을 1796(정조 20)에 복원되었다. 다만, 소유정은 복원되지 못하고 그 유허지만 남아 있을 뿐이라 한다. 일찍이 대구 유학의 선구자들이 시문을 나눈 곳이다.

 

-검단동 방문 환영 안내 -

 

   장맛비가 며칠째 내리고 있다. 간밤 부산에는 폭우로 지하 차도에서 세 사람의 귀중한 인명 피해가 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우리 지역은 아직은 별다른 일이 없어 다행이다. 영진전문대학 건너에서 환승한 북구 1번 버스로 성화 여자 고등학교와 검단 네거리를 지나 검단동 행정 복지센타 2” 정류장에 내렸다.

 

- 압로정 -

   검단로 동쪽 민들레 타운 아파트로 가는 검단 토성(왕옥산?) 산자락 얇은 고개를 내려 안국사 이정표가 있는 금호강변으로 내려섰다. 저만치 금호강은 흙탕물 소용돌이를 치면서 흘렀다. 압로정 가는 강변길은 강물이 넘친 물구덩이로 발 내디딜 곳이 힘들었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산자락에 기와집 한 채가 보인다. 안국사인가?, 압로정인가? 갸웃 둥 했다.

 

-빗물에 불어난 금호강 -

   하늘은 온통 잿빛이다. 성난 강물은 이따금 뚝 닥 뚝 닥 괴성을 지르면서 넘실대 무섭기도 했다. 빗방울은 우산을 접을 수 없도록 그칠 줄 몰랐다. 개 짖는 소리가 더 요란하다. 압로정 문간 앞에서 짖어대자, 대나무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두 마리가 앙살 지게 짖어댄다. 오금이 저려 꼼작할 수가 없어 먼발치에서 돌아선다. “아이고 이 놈아....",  개에 대한 트라우마로 골목 답사 시캥캥 소리만 나도 빙 돌아서 갔다. 비를 맞으면서 찾아왔는데.... 아쉬운 발걸음이 강물보다 무거웠다.

 

- 금산제 -

 

-압로정/뒷 편 -

  금산제(琴山齊) 낡은 현판이 붙은 재실 앞 골목으로 들어섰다. 검단로 큰길에서 검단 토성을 밟고 압로정으로 넘어가는 산길이다. 비포장 자갈길에 등산화가 빗물에 절벅거렸다. 흠뻑 맞은 비에 더 붉게 보이는 백일홍 꽃가지 사이로 압로정 뒤 처마가 보인다. 한발 한발 소리죽여 다가선다. 개들이 낮잠을 즐기는지 조용하다. 뒤 담벼락으로 붙어 간다. 캥캥 대숲 쪽, 두 마리가 깨어난 모양이다. 회화나무 아래 대문간을 지키던 누렁이도 덩달아 컹컹댄다. 진퇴양난이다. 얼른 뒷담에서 멀어졌다.

 

- 안국사 가는 길 -
- 물 구경 나선 소년들 -
- 안국사 철문 -

 

-문 밖에서 들여다 본 안국시-

   절벽 끝으로 난 좁은 청석 길을 따라 안국사로 내려갔다. 불어난 강물은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댄다. 어디선가 깔깔대는 소리가 들린다. 강기슭을 거슬러 물 구경을 나선 청소년들이다. 우스갯소리로 구경 중에는 물 구경 불구경이라 했는데, 소용돌이치는 강물을 바라만 보아도 무섭고 현기증이 나는데 젊음이 부러웠다. 안국사 철 쪽문 앞에 멈춰 섰다. 당분간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내걸리고 빗장이 채워져 있었다.

 

- 검단토성 가는 길/백두종합정비 안쪽 모산골 -

  검단토성(儉丹土城)을 찾아간다. 검단로 LPG 충전소를 돌아 백두종합정비소 앞 모산골 안쪽 꼬꼬 식품 위쪽으로 들어섰다. 금호강변으로 넘어가는 안부에서 좌측 절벽 위 산책길을 따라 올라선다. 비는 하염없이 추적추적 내리고 숲속의 사방은 어둑어둑하다. 일찍이 대구 지역에는 많은 성()이 산재하여 있다. 달성토성, 대구읍성, 산성산 산성, 용두산 토성을 비롯한 지난번에 들렸던 고산서당이 자리한 성동산 토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모두가 소중하게 보전해야 할 우리의 문화유적이다.

 

- 검단 토성 안내 글 -

 

   검단토성 만해도 원삼국시대(A.D1~3) 건립된 것으로 그 둘레가 약 1.8km로서, 동쪽은 금호강의 자연단애(自然斷崖)를 그대로 이용하고, 북쪽과 남쪽은 구릉의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다. 서쪽은 침식곡을 가로질러 쌓았으나 개발로 그 흔적을 잃고 있다. 또한, 성 내부에서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토기, 석기 등 의 흔적이 발견되어 취락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검단토성 안내)

 

-검단토성 흔적 -

 

-의현사 -
- 검단공단/(우) 의사 소몽 채기중 순국 기념비-

 

-검단동 행정복지센터 -

   검단토성 위로 걷는 셈이다. 서쪽으로 소쿠리 모양의 넓은 밭이 형성되어 있다. 한참을 올라서면 고인돌의 상석 같은 2기의 바위가 보이고, 그 옆에 봉무토성 안내판이 엉성하게 세워져 있다. 우리 지역 문화유적 관리의 현실이다. 내려서는 숲속 길목에는, 고려 공양 왕조 호조전서(戶曺典書) 두문동 72현 일인 시정의공 인천 채씨의 중시조를 향사하는 의현사(義峴祠) 가 있다. 검단공단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 먼 곳(검단토성) 의 역사를 딛고서 새롭게 조성되는 금호 워터 폴리스라는 행복이 흐르는 금호강 새 시대를 열어간다.

 

<여정 메모>

-언제:2020.7.24.() 11:00~17:00

-어디:검단동 압로정, 검단토성

-누구:청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