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들바위역 4번 출구로 내려서 건들바위 네거리를 좌로 건너면 이천동 고미술품 거리가 시작된다. 이천로31길로 들어선다. 중남부 수도사업소 뒤편 골목이다. 우측 수도산 높은 곳에 터를 잡은 서봉사가 부처님의 세계에 닿아있다.
골목은 80년대쯤 도회지의 전형적인 형태를 – 길고 좁은 길, 슬라브 주택과 기와집, 벽돌 담장, 철조망 담장, 대문간 옆 장독대, 넝쿨식물- 간직하고 있어 보인다. 오른편 이천로54길 끝머리에 서봉사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이천동 99계단으로 착각을 한 곳이기도 하다. 정작 99계단은 서봉사 뒷문 작은 도서관이 있는 이천로29길 끄트머리에 있다.
이천로29길을 가로질러 이천로27길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빌라 옆 벽화가 그려진 담장을 따라 99계단으로 올랐다. 시가지가 한눈에 시원스럽게 들어왔다. 하지만 그 속의 현실은 녹녹지 않다. 재개발의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공가란 붉은색 스프레이 글, 경고장이 붙은 대문간, 접근을 막은 줄 등은 오순도순 마주한 웃음소리, 다정한 발걸음이 사라지고 텅 빈 곳만 남겼다.
영선초등학교 뒤편 언덕 위에 있는 집들의 막다른 골목 이천로29길을 들어갔다 되돌아 나와서, 캠프헨리 사거리에서 대명동으로 넘어가는 이천로19길을 따라 외국인 학교 정문으로 갔다. 먼발치에서 담장 안의 건물을 바라보면서 지난봄 미국 여행 중에 들린, 소박한 시설의 초등학교와 울창한 삼림 속에 어우러진 대학교 교정을 걸었던 그때가 생각났다.
감로사가 있는 마태산 등을 타고 올라가는 마태산길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길 아래서 쳐다보면 언덕 위에는 무언가 신비스러운 것이 있을 것만 같아 발걸음이 빨라진다. 단숨에 오른 고갯마루에는 스님이 열심히 비질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일제 강점기 “마치다” 별장이 학강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모르고 지나왔다.
교대역 월드메르디앙 아파트와 영선초등학교 사이 고개 이천로25길로 내려와 이천로27길로 해서 금비약국 옆 이천로19길에서 봉덕로9길 봉명네거리로 나왔다. 길 건너 봉덕119 안전센타 뒤편 희망로1길 골목을 돌아 대구 신일교회 건너 중화 요리점(적벽강)에 짜장면 한 그릇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돌이켜 보면 이천동 일대는 개발사업 추진 방식이 어떠하던 지역이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오밀조밀 어깨동무한 지붕들이 헐리어 나간 자리에는, 머지않아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잊혀 가는 세월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아닌가?
'황금가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어린 골목 – 비산 2동/2019.12.16 (2) | 2019.12.27 |
---|---|
끝나지 않은 골목 3 – 봉덕2동/2019.12.11. (0) | 2019.12.22 |
끝나지 않은 골목 1 – 침산1동/2019.12.07 (0) | 2019.12.21 |
11-(10~11). 잃어가는 골목 대명2동 · 이천동/2019.11.16. (3) | 2019.11.27 |
11-(07~09). 당산나무가 있는 신천1·2동/2019.11.06 (2) | 2019.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