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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청산도의 봄


- 봄이 뭍으로 올라 오는 청산도 당리 마을(엉화/서편제 촬영지) -

청산도를 다녀왔다. 영화 “서편제‘와 ”봄의 왈츠“를 촬영한 주 배경지가 된 섬, 청산도는 완도 연안 여객선 터미널에서 뱃길로 45분의 쪽빛 바다 물살을 갈라야만 닿게 되는 아름다운 섬이다.

대구에서 5시간 30분을 달려 연안부두에 당도했지만, 11시20분 청산도행 배는 매진이 되어 탈수가 없었다. 오후 2시 20분 배편으로 들어가야 할 만큼 관광지로 변모해 느림의 미학인 슬로우(slow)섬 이름에 걸맞지 않는 차량과 사람들로 붐비는 섬이 되어 있었다.

내가 이 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년 전 신문 스크랩(국민일보/‘99.1.23.)을 하면서 부터다. 그 때 신문은 청산도를 “해는 잊혀진 섬에서 잠든다” 라고 제목을 뽑았다. 이듬해 다른 신문은 ‘초가 - 돌담길 사이로 신선이 거닌다’ 라고 했다. 그 만큼 청산도는 영화 서편제(1993년/임권택 감독)의 촬영 무대가 되기 전만해도 잊혀진 섬이자 외로운 섬 이였다. 또한 아름다운 섬의 풍광에 신선이 살았다고 선원도(仙原島)라 불리기도 했다 한다.

일상을 벗어나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역마살이 끼였다고 하곤 했다. 일탈을 즐기는 나에겐 호제가 아닐 수 없었고, 그때마다 가슴에 슬어 담았지만 실로 찾아가기 까지는 10년을 곰삭혀온 쉽지 않은 걸음이었다.

남녘의 땅은 봄이 먼저 바다 건너 뭍으로 올라오는 길목이다. 순천에서 벌교, 보성, 장흥, 강진, 해남은 일찍이 다녔던 길이다. 진달래꽃이 온산을 붉게 물들이는 봄의 제암산에서, 금빛 출렁이는 두륜산의 억새꽃을 찾아 다녔던 기억이 나는 길목이다.

완도는 18년의 유배 생활을 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포” 등 500여권의 책을 펴낸 다산 정약용 선생과 “모란이 피기까지는” 라는 시로 나라 잃은 설움의 울분을 삼킨 영랑(김윤식)선생의 생가 있는 강진을 지나 땅 끝 마을이 있는 해남으로 가기 전이다.

청산 도청 항에 뱃머리가 붙여졌다. 선착장에는 뭍으로 나올 사람들로 북적이고, 배에서는 싣고 온 차량과 사람들이 뒤섞여 썰물처럼 내렸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마을버스도 한몫을 거들고 있었다. 선착장을 벗어나 1km정도로 걸으면 야트막한 고개로 올라서진다. 당리 마을이다. 영화에서 진도아리랑을 절규하듯 부르면서 내려서는 돌담 황토 길이 다랑논 사이로 뻗어 있었다.

화랑포(花浪浦) 해안을 돌아 읍리 고인돌과 하마비를 보고 다랑논이 있는 청계 마을로 넘어갔다. 신풍 부락과 구들장 논이 있는 부흥 ․ 양지 마을을 지나자 신흥리 불등해수욕장이 나왔다. 물이 빠져 나간 갯벌에는 관광객들이 조개를 줍는다고 뒤척이고 있었다. 섬 안은 제일 높은 매봉산(384.5m)에서부터 대봉산, 대성산, 대선산, 고성산, 보적산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어 아늑하고 평화스럽게 보인다.

돌담길이 아름답다는 상서 마을로 올라갔다, 좁다란 골목은 갈색의 돌들로 정갈하게 담장이 쌓아져 있었다. 제주의 화산 돌담길과 경상도 지역의 흙 한줄 얹고 돌 한줄 얹어서 쌓은 담과는 전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석양빛에 불그스레한 담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길은 포근하기 그지없어 마치 헐리고 없어진 고향집 골목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매봉산의 산행 들머리 원동 마을로 내려서 신흥마을 숙소로 향했다. 불등 해수욕장을 지나 진산 마을로 곧장 넘어갔다. 내일 아침 일찍 나서기 위해서 섬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진산 갯돌해수욕장을 지나, 국화마을 소나무해변을 옆으로 끼고 나오니 선착장이 있는 도청 마을 이였다. 도청 마을에서 청산초등학교로 올라갔다. 전교생이 80여명이라 하나, 섬 지역 학교를 감안하면 제법 많은 학생이 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박집은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어서 조망이 무척이나 좋았다. 썰물 땐 매봉산 자락으로 이어지고, 물이 차오르면 섬으로 변한다는 목섬이 눈앞에 보이고 그 너머 멀리 옆으로 길게 누운 섬이 거문도라 했다. 향도(목섬)는 신흥해수욕장을 보담고 있었다.

매봉산 정상에서 맞이한 일출은 또 다른 감흥을 안겨 주었다. 수평선 너머 거문도 앞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본다는 것은 대단한축복 이었다. 섬에서 보는 일출은 해무로 어려운데 섬 내에서 제일 높은 산의 정상에 맞았다는 것은 보통 행운이 아니었다. 아침 9시50분 두 번째로 나가는 배를 타기위해 5시30분 컴컴한 새벽에 원동마을에서 올라 상서마을로 내려왔다.

10시50분 완도선착장에 내렸다. 애초 오후 1시에 청산도를 나설 예정에 비해 시간을 많이 당긴 셈 이였다. 어저께 잠시 둘러 본 신지도로 들어가는 신지대교가 높다랗게 바다위에 걸쳐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충무공의 사당이 있는 작은 섬은 가지 못하고 면사무소를 들렸다 나왔다.20177년 개통을 목표로 신지도와 고금도를 있는 교량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했다. 인간의 욕망을 위한 자연이 아픔을 겪고 있다. 문득 일본의 대지진 재앙이 떠올랐다.

남창에서 2일과.7일에 서는 오일장이 열리고 있어 둘러보았다. 바다가 가까운 탓에 해산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오래 만에 먹어보는 국화빵도 제 맛이 났다. 정약용 선생이 머물렀던 다산초당과 백련사가 자리한 만덕산 석문을 지나 강진으로 나왔다. 강진에서 영암 월출산 무위사로 갔다. 옛 가람은 극락보전(국보 제13호)만 남아 있고 최근에 가람들이 중창된 무위사지만 극락보전과 창건 당시의 채색을 그대로 간직한 후불탱화 등의 귀중한 문화재가 남아있는 유서 깊은 사찰을 찾아간 보람을 느꼈다.

강진 읍내에서 남도음식의 진수를 탐하고 15시30분에 길을 재촉했는데도 진주와 군북, 산인까지 고속도로는 끝없는 꼬리를 물고 있었다. 예정 시간 보다 2시간이나 지연된 밤 9시경에 도착을 했다. 장장 900여 km를 달린 셈이다. 꼭 한번은 가보리 라고 마음에 쌓아둔 껍질을 또 한 겹 벗겨내는 기쁨은 형언키 어렵다.삶의 향기가 되어 오래도록 흩날릴게 될 것이다.

<여정 메모>

- 일 시 : 2011.3.26.(토)~3.27.(일) 1박2일

- 곳 : 청산도

- 함 께 : 4명(남 소장 내외, 청산 내외)

- 청산도의 봄/ 당리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 -

- 청산도의 봄/ 봄의 왈츠 촬영지 -

- 청산도의 봄/ 읍리 마을 전경 -

- 읍리 마을 고인돌과 하마비 -

- 신흥리 해두욕장/여유로움을 즐기는관광객-

- 돌담 아름다운 상서리 마을의 골목 -

- 상서리 마을 다랭이 논/청보리 -

- 청산초등학교 전경/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학생들 -

- 민박집에서 내려다본 풍광/앞에 보이는 섬이 목섬 -

- 매봉산 정상에 맞이한 일출 광경 -

- 매봉산에서/ 가운데/상서리, 우측/동촌리, 정면/신흥리 해수욕장 -

- 부흥리, 양지 마을의 구들장 논 -

- 완도 연안여객선 터미널 전경 -

- 완도 여객선 터미널 앞 공원의 동백꽃 -

- 청산도 가는 배표를 예메하기 위새서 -

- 완도항 전경 -

- 청산도 가는 길/ 뒤로보이는 섬이신지도 -

- 청산도 가는 뱃전에서 -

- 영암 월출산 무위사 벽화/성보박물관에서 -

-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량의 물결/함안 -

- 언제나 그리운 섬 청산도를 뒤로 하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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