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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지바위골 삼층석탑

- 지바위골 삼층석탑 전경-

6월 초순의 날씨로는 너무 더웠다.

오늘 대구 지역의 기온이 31도를 넘는다 하니……

경주 남산으로 갔다. 국사 골과 지바위골의 삼층석탑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서출지 무량사지 뒤편 능선으로 오르면서 국사 골에 복원된 제사사지 삼층석탑은 보았지만, 팔각정과 부석(浮石)에 올랐다 개선사지 능선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지바위골의 탑을 보지 못했다. 그때의 안타까운 마음을 1년 만에 되찾아간다..

가는 길목에 상서장(上書莊)을 잠시 들렸다. 신라 말의 학자로 ≪계원필경≫를 남긴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었다. 선생은 신라 헌강왕 때에 태어나,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하고 18세에 돌아와 과거에 급제를 하면서, 기울어져 가는 나라 일을 걱정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노년에는 해인사에서 여생을 보낸 분이다.(안내문에서)

오랜만의 길은 초입부터 혼란스러웠다. 남산리 동․ 서 탑을 지나 불국사 역 앞에서 이전복원 한 염불사지 삼층탑이 있는 칠불암 길로 올라서다 되돌아 나왔다. 무량사 에서도 앞선 등산객을 따르다보니 오산 골을 벗어나 돌아 나와서. 통일 전에서 포석정까지의 8.1km를 넘어가는 국사 골로 들어가는 길을 겨우 찾아 들었다.

울창한 나무 그늘이 시원함을 느끼게 했다. 지난해 길을 잘 못 들어서 탑을 찾지 못한 마음에 오르내리는 산인들에게 물었으나 아무도 모른다고만 했다. 내가 아는 정보로는 국사 골에서 부석으로 오르는 일원에 근자에 3기의 탑을 복원하였다고 왔는데 마음이 초조해졌다.

국사 골은 가뭄 때문인지 건곡이 되어서 물이 철철 흘러내렸으면 금상첨화였을 터인데……, 아쉬웠다. 그래도 산길은 이름 모를 꽃이 길손을 반기고, 뻐꾹새 소리가 짓궂게 들려오기도 했다.

부석 바로 아래 삼거리에 올라섰다. 지난번 내려갔던 개선사지 길목은 막아놓고 지바위골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었다. 커다란 이중 바위 아래 돋을새김을 한 마애불이 두 곳에 있었다. 한 곳은 조금 특이한 불로서 근세에 누군가가 새긴 것으로 전해져오고, 옆 바의 사면에 새겨진 마애불은 풍화에 아래부문은 마멸이 되어있었다.

지바위골 한 기의 석탑은 능선에 자리하고 있었다. 무게가 제법 나갈 것 같은 자연석을 지대석으로 삼은 삼층석탑 이였다. 탑이 세워진 내력을 알 수가 없어 남산에 사라진 여러 폐사지 중의 한곳이 아닐까한다. 옥석 받침은 4단이며 상층부의 복발은 복원 시 새 재료로 짜 얹은 듯했다.

지바위골의 마지막 삼층석탑은 어디쯤인지 찾을 길이 막연했다. 계곡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한참이나 들어가도 만날 수 가 없었다. 지난번에도 찾지 못했다는 마음이 다시 올라 계곡을 건너 능선으로 올라갔다. 탑은 작은 계곡을 두 번을 건너서야 나뭇가지 사이로 빼 꼼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 계곡을 헐레벌떡 다닌 땀의 보람이 있었다.

삼배를 하고서 내려섰다. 지난해 천불 탑을 두 번이 가서야 찾았듯이 지바위골의 두 탑도 두 번씩이나 발품을 팔아야 만나 주었다.

남산 일원에는 64기의 탑이 산재하여 있다는데, 겨우 27번의 답사로 아직도 산 속 어디 엔 가나 들녘 한 귀퉁이에는 찾아오는 사람은 없어도 탑은 홀로서 있지 않을까한다. 언젠가 다시 걸음품을 챙기고 싶다.

<여정 메모>

- 일 시 ; 2011.6.12.(일) 08:30~15:00

- 곳 : 경주 일원(국사골, 지바위골)

- 함 께 : 2명(청산 내외)

-보리가 익어가는 남산리 마을 -

- 모내기를 한 남산리 마을 들녘 -


-서출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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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골 길목의 자주색 감자꽃 -

- 지바위골 의 마애불 -

- 지바위골의 첫번째 삼층석탑 -

- 오산골 개울 건너편의 마애석불 -

- 남산리 마을 담벼락의 접시꽃 -

- 모내기를 마친 들판 광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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