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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강화 나들길-교동도

 

- 교동도 대룡시장( 시간이 멈추어 가는 곳) -

교동도 가는 날은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아침 5시48분발 KTX 고속열차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동대구역 가는 길은 한산해 일요일 새벽임이 실감났다. 코레일 공단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하루 요금이 만 삼 천 원인데 30퍼센트 할인하여 구 천 백 원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안 오른 것이 없는데 종전보다 구백 원이나 내려서 의아했지만, 인근 사설 주차장은 종일 오천 원이라는 입간판이 내걸려 있었다.

역의 개찰구가 북서 방향으로 10m 정도 이동되어 있었다. 예전은 역무원이 노선별 시간대별로 입구에서 일일이 검표를 했었다. 2004년 KTX 개통과 더불어 검표기가 대신했으나 지금은 검표기도 역무원도 없는 자율 입장이다. 차내도 마찬가지다. 여객전무와 차장이 좌석마다 선잠을 깨워서라도 차표를 확인하고 종착지에 내려 출구로 나올 즈음엔 새마을, 우등, 보통 열차별 표를 내밀었는데 그냥 나온다. 성숙한 국민의식 덕인지 IT 문명의 과실 때문인지 많은 변화다.

새마을호가 서울까지 3시간 반을 달리는데 KTX는 2시간 못 미쳐 당도한다. 동생 내외가 나와 있었다. 일요일 이른 시간의 거리는 서울도 예외는 아닌지 붐비지를 않았다. 몇 해 전 에 다녀온 강화도 여정 길은 새마을호로 올라와 신촌에서 시외버스를 탔다. 한강 서른 개의 다리 중에 성산대교를 넘어 48번 국도의 김포 시가지를 지나 강화대교로 해서 들어갔다.

인삼의 고장답게 인삼판매장 앞길은 사람들로 활기차 보였다. 교동 섬 가는 길목의 이정표는 녹색의 교통 표지판보다 적갈색의 문화유적 안내판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역사의 숨결이 베인 고장임을 말하고 있었다. <강화 고인돌> 유적지에 내렸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었지만, 예전 석모도를 다녀오는 길목에서 보았던 고인돌이 아니었다. 허허벌판위에 서 있는 고인돌을 보고 감개무량 했는데......, 아무런 감흥도 나지 않았다. 잘 가꾸어진 잔디위에 전시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덩그렇게 세워진 박물관이나 군데군데 지어놓은 움막집에서는 세월의 채취를 느낄 수가 없어 안타깝기만 했다.

창후리 선착장에 닿으니 교동도로 들어가려는 차량이 길게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바닷가에 쳐진 철조망만 해도 괜히 몸이 사려지는데 허리 총을 한 군인이 아래위로 바라본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 뒤끝이라서인지 바다는 안개가 자욱했다. 바닷물이 빠르게 빠져 나갔다. 바다의 물빛은 짙은 잿빛이었다. 갯벌 때문이라 한다. 동해 바다에 익숙한 탓인지 바다 같아 보이지 않았다. 모래톱의 갈매기가 일제히 뱃전을 따라나섰다. 사람들이 던지는 과자 부스러기에 허공을 치솟았다.

우리나라 최초인 고려시대에 세워진 화개산 <교동향교>로 올라갔다. 관리하는 분으로부터 멀리서 왔었다면서 대성전을 비롯한 곳곳을 안내 받았다. 향교가 자리한 산자락의 옥수수 밭은 초록 바다로 출렁거렸다. 일찍이 교동도를 위해 헌신한 지방관의 공덕비를 한자리에 모아둔 비석거리를 지나 화개사로 올랐다. 찾는 사람이 드물어서인지 법당 문이 잠겨 있었다. 약 1.2km 정도 올라서면 교동 섬의 최고봉 화개산(259m) 정상을 올라 설수 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교동읍성>을 찾았다. 읍성은 1629년(인조 7)에 축조되어 동 남 북 세 곳에 성문이 있고 각 문에는 문루가 세워졌다는데, 현재 동문과 북문은 남아 있지 않으며 남문인 유량루는 1921년 폭풍우로 무너지고 하늘이 쳐다보이는 홍예(虹霓)만이 남아있다 한다.

대룽시장으로 갔다. 여행 마니아들에 의해 우리나라 60~70년대의 전형적인 시장 골목을 대표하는 것으로 미화되어 각처에서 발길이 잣고 있다. 시장 골목은 폭1.5~2m 길이가 약 600m 정도로 흙 판자 집, 함석집, 슬레이트 집에서 2층 옥탑 방이 있는 일본식 처마도 보였다. 골목 양쪽으로 이발관 ,신발가게, 모터 펌퍼 상회, 잡화가게, 약방, 다방 간판이 번갈아 붙어 있었다. 골목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 어릴 적 고향의 오일장날 면사무소 뒷길 한 모퉁이를 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몇몇 여행객이 기웃거리면서 지나갈 뿐 한적했다.

면사무소를 지나 고구 저수지로 넘어갔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과 함께 조선시대 연산군이 유배지였으며, 현대에 와서 군사분계선이 서해 바다로 가로지르는 민통선 최 접적 땅이다. 간척 사업으로 닦여진 파란 들녘이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가로지르는 들판 한가운데 군데군데 미곡처리 창고와 도정공장이 곡창지대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월선 선착장에도 차량이 늘어서 있었다. 배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들어오는 사람에 따라 시간을 맞추어야 한다. 아픈 역사가 서려있는 강화 나들길의 마감은 길상면 초지리와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 <강화 초지대교>를 넘어 대명항으로 나오면서 마쳤다.

교동도!

민통선 넘어 우리의 산하가 맞닿은 곳이다. 철조망이 끝도 없이 쳐져 있는 해안선에서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도 소리 없는 총칼로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는 현장이다. 남으로 향한 북녘 병사들이 총구에 내 두 눈이 마주치지나 않을까 하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 곳이다.

 

교동섬의 대룡시장은 향수를 불러오는 추억이 아름답게

솟아나는 곳이라 했지만... 

골목을 지나기조차 미안 스러웠다.

 

종일 가게를 지키는 어르신을 힐긋힐긋 바라보는 마음이

민망스러워 눈을 돌리고 말았디.

       - 교동도를 다녀오면서 -

- 일 시 : 2012.7.1.(일) 05:40~22:10

-곳      :  강화 교동도

-함 께  :  6명(동생네와 함께)

 - 교동섬 안내도 -

 - 교동섬( 뒤로 화개산) -

 - 교동섬으로 (창후리에서 월선 선착장으로 가는 길) -

- 자건거로 섬 내를 한바퀴 (동호회원들) -

- 뇨룡암 비(교동향교 내) - 

- 옥수수 밭  - 

 - 화개사 부도 -

- 모종을 이식하는 농부 - 

- 읍내리 비석거리 - 

 - 교동 읍성 -

- 시간이 멈추는 곳 (대룡시장) - 

- 시간이 멈추는 곳 (대룡시장) - 

 - 시간이 멈추는 곳 (대룡시장) -

 - 인사리 들녘 -

 - 나아 갈 수 없는 곳 -

 - 철조망 너어로 (서해 바다, 그 너머는... )-

 - 교동도를 떠나면서 -

- 김포 대명항(초지대교/ 강화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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