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사지 가는 길은
느즈막한 걸음으로 나섰다. 창녕군 영산면 구계리 내촌리로.....
창녕군 일대에는 많은 문화 유적들이 산재하여 있는 곳이다.
지난 봄날 계성면과 영산면을 경계로 솟아 있는 영축산 산행을 한적이 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구계 마을의 범상치 않음을 새겨 두었는데...
태풍" 쿠웅"의끝 자락을 타고 내리는 빗방울을 뒤로한 채영산을 들어서니한낮의 땡 볕은
마지막 광기로 발버둥 쳤다.
옛 말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듯이... 마침닷새장(20일)이 서서, 장터는 아침부터 붐벼 됐지만
시골 냄새를 맡으려고 흠~흠거렸지만 그것이 그것인허사였다.
장터를 거슬러 영취산 자락" 영산읍성지"의 기초가된 태자봉으로 올랐다.
시가지가 훤이 내려다 보였다.면 소재지 치고는 괭장히 큰 고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 남중1.여중1 .남고1,여고1 각각 소재하고 있음)
구계리로 가는 들목은 호리병과 같이 좁았으나, 2개의 저수지가 연달아 나타날 만큼 넓은 농토가 눈앞에 나타난다.
내촌리 유지 분의 말처럼 6.25 동란시 4만 여명의 피난처였을 만큼 정감록엔없다지만 십승지지의 땅으로 보여졌다.
사라호 태풍(1959년 추석 발생)에죽은 고사목 밑둥치가 아직도시커먼 상처로서 남아 있는 다락논 가운데 성황당을 둘러 보고 옛 보림사지로 향했다.
흙담으로 떠받친 지붕밑돌담 골목길을 돌아서 찾아간폐사지는 감나무 밭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옛날 보림사의 공양미 씻은물이 영산천을 뿌허였게 했다고....믿을수는 없겠지만 촌로는열심히 말을 이었다.
허망한 마음은 대숲 깊숙이에 덩그러히 파묻혀 있는 부도를 맞닿드릴 때더더욱 아파왔다..
삶의 무게에 힘들고, 어려워했을 중생들의 아린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지면서 삼라만상의 밝고 높은 곳으로 나서게 했었을,
깨달음의 존자가 남기고 간 흔적......
< 일 정 >
=일시 :'06.8.20(일)
=함께한 사람:수하, 청산 부부 동행
-10:00~11:20: 이동(대구--영산)
-11:20~16:00: 문화재 탐방(법화사 다층석탑, 구계리 마애석불좌상, 보림사지, 영산석빙고, 만년교, 보림사지 삼층석탑)
-16:00~17:00:중식
-17:00~17:45:문화재 탐방(교리 신씨고가, 영산 향교)
-18:00~20:휴식(부곡 온천욕)
-20:00~22:00:이동 및 석식(부곡--대구/21:00도착/석식)
* 아쉬웠던 점은 辛씨 고가의 출입을 허락치 않아서 둘러볼 수 없었다. 주인장의 불허 사유는 내방객들이 무엇이던지
갖고 가버려서 영산인만이 허용 한댔다. 대문치에서 안 마당을 바라 보고만 나왔다. 찾아가는 모두들이 주인장에대
한배려를 하지못한 탓이니 어쩌하랴....
허나~ 유익한...해피데이였다.
-상:보림사 부도
-하:보림사지(감나무 밭)
-보림사 삼층석탑(영산초등학교정 내)-
-구계리 내촌마을 앞 성황당-
-영산 만년교-
-영산 5일 장날 풍경-
-구계리 내촌마을 돌담 길-
-구계리 중촌리 법화암 경내에 아름답게 핀 수련-
-법화암 대웅전 부처님-
-보림사다층석탑(법화암 내)-
-법화암 스님으로 부터 녹차 한잔...-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양에서 온 태조왕건 (0) | 2006.09.18 |
---|---|
다라국을 찾아서... (0) | 2006.09.10 |
히말라야의 순결....라닥을 다녀왔습니다. (0) | 2006.08.16 |
비.비... 물.물... (0) | 2006.07.18 |
천년의 마음을 얻으로 가다 (0) | 2006.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