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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저무는 날의 소금강산 백률사

소금강산!

해발 143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신라 불교를 꽃피운 순교자 이차돈의 넋이 깃든 곳이다.

일전에 헌덕왕릉 과 탈해왕릉까지 둘러보고 아쉬운 걸음을 떼었던 곳이라서 시간을 내어서 다시 찾았으나 장맛비 뒤끝의 검은 구름이 어둠속으로 몰았다.


백률사 오르는 길목의 굴불사지석불상(보물 제121호) 부처님에게 합장을 했다. 사면불(동:약사여래 좌상, 서:아미타 삼존불, 남:석가 삼존불, 북/:미륵불)은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시에 땅속에서 염불소리가 들려 땅을 파니 바위가 나와 부처님을 앉히고 굴불사로 명명했다고 전해오는 사지이다. 서쪽의 아미타삼존불의 좌협시보살의 목이 없을 만큼 훼손이 심하다.

이차돈이 순교(죽음)로서 불국정토를 일으켜 세웠지만, 경주 땅의 부처님들은 목, 팔, 다리 의 전 부위가 온전한 불상이 없을 정도다. 언제 어느 시대에 어떤 연유로 훼손이 되어졌는지는 모르나 일본인(日本人)들에 의해서 아마도 가장 많이 훼손을 입지 않았나 싶다.


강당 저수지 안의 일성왕릉과 골목길을 몇 바퀴 돌다 찾은 탱자나무 아래 대리석으로 덮어져있는 신라 우물(남간사지)을 보면서 심히 부끄러웠다. 문화재 훼손이 어떠하다는 말을 감히 하기가 민망스럽고 모두의 책임이 아닐까 한다. 지난번에 숨박꼭질을 했었던 창림사지 가는 안내판(신라의 미소)은 아직도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보문호를 왼편으로 끼고서 덕동 댐으로 올랐다. 감포 길과 암곡동 갈림길에서 덕동, 명실 마을 쪽으로 들어갔다. 암곡리를 지나 무장사지로 찾아 들어가고 싶어서였다. 왕산 마을을 지나서 본격적인 채비를 나서자 시간이 4시를 훌쩍 넘고 골 안으로 먹구름이 잔뜩 몰려들고, 콸콸 흘러내리는 계곡 물이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무장사지 삼층석탑을 찾아가는 길은 또 다시 그리움으로 남겨두었다.


<여정 길>

-일 시 : 2007. 7.17(화) 11:00~18:00

- 곳 : 경주일원(일성왕릉, 남간사지, 굴불사지, 백률사)

* ‘07.7.21(토) 밀양 용암봉(686m)산행을 다녀옴.

-백률사 대웅전 부처님


-일성왕릉(신라제7대왕)

-남간사지 터(신라 우물)

-무장사지 가는 길목의 명실마을 쉼터에서

-무상사지 가는 저무는 길목

-무장사지 가는 길목의 개울

굴불사지 사면 석불(보물제212호?)

-소금강산 정상의 마애삼존 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