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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마애열반상(磨崖涅槃像)을 찾아서




-율암 마애열반상-


열반상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적하신 모습을 조각한 상이라 한다.

경주 율동 사당골 해발 128m의 8부 능선 시누대(조릿대 대나무)속 바위 아래면에 새겨진 열반상은 1998년 태풍 “에니”가 지나간 다음해인,1999년 2월7일현신(現身)한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라 한다.

발굴 당시에는 신문 지상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나, 그 뒤 문화재적 가치를 고증 받지 못해서 관리와 찾는 사람이 없어, 그 자태마저 사그라지고 있었다. 하니 찾아가는 길 마저도 물어~ 물어 올라도 찾기가 쉽지를 않았다.


경주 엑스포 단지 내에서 제3회 경북공예 대전이 이달 10일 부터 20일까지 열리고 있었다. 귀가 길목에 율동리로 가 열반상을 보기위해 송전탑 아래 까지 올라 이곳 저곳을 헤매였으나 찾지를 못했다. 포기하고 내려오다 밭일을 하는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다시 송전탑으로 올라 오른편 시누대 속을 헤쳐서 겨우 부처님을 맞이했다.


문득 천동골의 천통탑을 찾아 들었다가 못찾고 뒤돌아 내려와 달포가 지나 다시 가서 그리운 임을 만났듯이.....돌아 섰다면 두고~ 두고 서운했을 터인데, 한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물끄러미 내려다 보기만 했다.


부처님의 전신을찬찬히 살펴보면 얼굴과 손과 두 발을 볼 수 있다 했지만, 이젠 얼굴 윤곽 조차 희미했다. 발견 당시의 떠들썩했음 보담, 주변을 정비하고 보존에 신경을 조금만 가졌다면 다행히 비 바람을 피 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가진 “ㄱ”형 바위 면에 새겨진 부처님 상인데..... 보존 가치가 없었다고 하니 문외한의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기원전 624년 인도의 가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나서 온갖 부귀 영화를 버리고, 번뇌속의 깨달음을 찾아 45년동안 중생들을 깨우치시고. 80세에 쿠시나가라(Kusinagara)의 나이란자나(Nairanjana) 강에서 목욕후 사라 나무가 줄지어선 곳에서 열반에 드셨다 한다. 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기리기 위한 어느 불심 깊은 정성 마져도 세월의 무상에 파묻혀 가고 있음일 뿐이다.

보문단지 건너편 소금강산 능선에 어제 일어난 잔불이 다시 재발되어, 10여대의 헬기가 보문호를 들락 거리면서 진화작업을 하고 있었다. 불조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말이다. 정말 속이 타는 일이다.


<여정 메모 .>

-일 시 : 2009. 4.11.(토) 13:00~18:20

- 곡 : 경주 일원(엑스포 공원, 율동마을)

- 함 께 : 청산인 외(처, 둘째 딸 내외, 은별이)


- 율동마을 전경 -

- 마애열반상 가는 조릿대 길 -

-마애열반상 이 새겨진 바위면( 우측)-


- 마애열반상 좌측의 명문과 그위의 부처님상(명문은 30자 정도이나, 戊戌年,法泰法師 외는 알 수 없다함)-


- 구황리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들녘(진평왕릉이 있는 숲이 뒤로 보인다.)-


- 진평 왕릉-


- 경주 엑스포 공원 입구(입장료가 6,000원이라...)-


- 제3회 경북공예품 전시회출품 작품(청산도예)-


-제3회 경북공예품 전시회 출품된 작품(청광도예) -



- 제3회 경북 공에품 전에 출품된 작품(청광도예) -


- 제3회 경북공에품 전에 출품된 300인 명장 작품(자수/이숙자 )-


- 제3회 경북 공에품 전에 출품된명장 300인 작품(김재철이사장)-


-소금강산의 불로 경주가 온통 야단 법석이지만 (한가로이 자전거, 야유회 나온 자동차, 나도 한몫)-


- 보문호에서산불 진화에 여념이 없는,헬기들의 물 공수 모습(담배불이 원인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