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루봉에서 내려다본 거문도 등대 전경 -
백도를 보기 위해서 거문도로 갔다.
거문도(巨文島)는 여수에서 뱃길로 117km떨어진 곳에 위치하면서 행정구역상으로 여수시 삼산면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면소재지인 고도와, 동도, 서도로 이루어진 천혜의 항구를 가짐으로서 일찍부터 열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곳이기도 하다.
그중 거문도 사건하면 모르는 사림이 없을 정도로 역사로 남아있다. 영국군이 1885년 4월부터 1887년 2월까지 6척의 군함과 2척의 상선을 상주시키면서 점령한 사건이다. 그 후 일제 36년의 강점기를 거치면서 곳곳에 일제의 흔적들이 아직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느 해보다 7월 장마가 길어서 출발 자체가 명확치 않았으나, 장마전선이 잠시 주춤하여 거문도를 들어 갈 수 있었고, 다음날은 날씨가 좀 더 쾌청할 것이라는 예보에 모두들 다행스러움이 역력해 보였다.
가는 길목에서 나로도와 손죽도, 초도를 경유 하드라도 2시간20분에 닿는다는 쾌속선(오고가고 호)은 너울 파도로 인하여 3시간이 넘게바다 물살을 가른후 거문도에 닿았다. 300명 정원의 배는 관광객을 쉼없이 솟아 내었다. 선착장은 여수로 귀향할 여행객들이 길게 줄을 지어서 북적되고 있었다.
거문초등학교 앞 골목으로 돌아 영국군 묘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좁은 돌담길이 섬 특유의 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산허리를 돌때마다, 발 아래로 보이는 남색의 바다와 삼면을 둘러 싼 본섬과 서도를 이은 아치형 삼호다리가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멀리 거문도 등대로 넘어가는 목넘이(수월목)로 보이는 부처 바위와, 큰바위 얼굴을 닮은 작은 섬(오리 섬, 밖 노루 섬)들도 포근하게 가슴으로 안겨 들었다.
영국군 묘지는 2명의 수병과 1명의 십자가 무덤으로 3기가 남아 그 옛날 이곳이 영국군이 들어왔었다는 흔적을 보이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목의 파출소 옆에 자리한 일제시대 신사 참배단이 있었다는 곳으로 가 보았다. 나이 많은 어른이 일러준 입구의 두 마리 사자상은 받침대만 덩그렁 하고, 돌로 쌓은 제단만이 흔적으로 남겨져 있었다. 서도(西島)의 제일 높은 봉우리인 불탄봉(195m)정상에도 T자형 벙커가 아직도 있다했다.
둘째 날 아침은 새벽부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당초 일정보다 이른 아침 6시에 백도로 가기 위해 선착장에 모였으나, 파도가 2.5m 아래로 떨어지지 않아서 출항이 어려워 설왕설래했기 때문이다. 먼저 거문도 등대로 가기로 했다. 등대는 목넘이 건너 수월산(170m)아래쪽에 있었다. 수월목 에서 1.2Km 거리에 있어 천천히 걸어서도 1시간 정도에 갔다 올 수 있다했다.
목넘이에서 어제께 본 부처 바위를 더 가까이 바라보면서, 동백나무가 숲 터널을 만든 길을 따라 수월산 등허리를 돌아 내려서니 새 하얀 등대가 그림같이 나타났다. 거문도 등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로서 1905년 4월에 준공된 100년의 긴 역사를 않고 있었다.
아침 식사 후 혹시나 하던 백도로 가는 뱃길은 좀처럼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어 불탄봉 산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마침 서도리(장촌 마을)에서 전라남도 무형문화제 제1호인 거문도 뱃노래 인“ 술비소리”(밧줄을 엮을 때 부르는 뱃소리) 공연이 있다기에 그곳으로 갔다. 마침 여수 MBC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고, 년 중 한번 밖에 하지 않는다는 귀한 문화 행사를 시간에 쫓끼어 전반만 보고 나선 아쉬움과 함께 친절한 마을 어른들의 훈훈한 정이 가슴을 찡하게 했다.
- 술비소리의 (중모리)-
어~ 허야 술비야 (어허~어허 술비야)
우리 배 그물은 삼천 발 이고요
나무배 그물은 오백 발 이고요
이 그물 싣고서 어디로 갈거나
칠산 바다에 바다 장을 헐라네
땡 피리도 걸러주고 대조구도 길러라
우리 배 배 임자 어깨춤 추고요
배김(임)자 마누라는 궁지(엉덩)춤 춘다네
~생략~
신(神)은 끝내 백도의 입도를 허락지 아니했다. 백도는 거문도에서 동남으로 다시 28km 떨어져 있어서 파고가 멎지 않으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갈 수 없는 곳이다. 무인도인 백도도 오래전에는 배에서 내려 섬을 둘러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볼 수도 없는“ 백도풍란”의 유출 때문에 섬에 내릴 수 없게 되었다한다. 우리들이 잘못한 대가로 인하여, 신은 이제 가까운 접근조차 허락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신선바위로 해서 보로봉(170m)을 올랐다가 16:30분에 선착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2시간을 조금 숨 가쁘게 달린 끝에 여수항에 내려섰다. 여행은 항상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 서지는가 보다. 그 아쉬움은 또 다시 그리움이 되고, 여행자는 그리움 때문에 다시 길을 나서게 되나본다.
금번 여정의 길에도 백도를 그리움으로 꼭꼭 다시 숨겨둔 채, “술비소리"의 귀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그렇게 끝을 내린 셈이다.
<여정 메모>
- 일 시 : ‘09.7.25.(토)~7.26.(일)
- 곳 : 거문도 일원
- 함 께 : 4명(남 수하, 청산 내외)
-거문도 섬 안내도 -
- 현풍 비슬산 -
- 섬진강 휴게소(남해고속도로 개통기념탑)-
- 오동도 청룡 코끼리 열차를 타기 위해서 -
- 여수 오동도 등대를 뒤로하고 -
- 거문도를 향해서 (여수 연안여객 터미널에서 배에 오르다.)-
- 손죽도를 뒤로 하고서 -
- 드디어 거문도에 도착하다. -
- 거문도에서 숙소를 향해서 -
- 영국군 묘지 가는 돌담 길이 아름다운 곳 -
- 영국군 수병이 잠든 묘역 -
- 거문도 거리(길 다방과 자건거 투어)-
- 아치형의 삼호교( 고도와 서도가 연결됨)-
- 첫날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제일 번화한 길) -
- 집들이 대부분 일제 건물식 그대로 남아 있다.-
- 둘째 날 새벽(06:00) 백도를 가기 위해서 선착장(뒤로 서도리 마을전경) -
- 거문도 등대를 뒤로하고서 (청산내외) -
- 등대로 가는 길에서 돌아다본 전경(뒤로 보루봉이 ) -
- 전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거문도 뱃노래"(술비소리) 시연행사 -
- 풍악의 장단에 맞추어 "술비소리"를 흥겹게 -
- 술비소리 공연 장면 -
- 여수 mbc에서 취재를 하고 -
-만선을 기대하는 풍어제 행사 -
- 보루봉 정상세서 바라본 거문도(삼호교 왼편/서도, 중앙/고도, 건너뒷편/동도) -
- 그리움을 남기고 여수로 귀향하는 뱃전에서 -
-나로섬으로 연결된 아름다운 다리위로 저녁노을이 물들고 -
- 여수로 귀향하다 -
-하늘에 걸린 초생달(남해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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