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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그리움을 찾아서- 팔조령 북봉대, 봉산.청호서원을 가다

 

 

- 수묵화의 첫 걸음 -

 

 

  올 여름은 유달리 더웠다. 

그만큼 지구의 온난화가 극심함을 반영하고 있는 샘이다. 더불어 일상 생활도 자연히 게을러졌다.  요즈음은, 지난 3월에 시작한 수묵화에 잔뜩 빠져 들고 있는것 같다. 많은 부분에 헛점 투성이지만 혼자 만의 포만 감을 느기고 있으니 말이다.

 

   날씨 만큼이나 이열 치열이라고, 용학 도서관이 주최한 수성구 선비 정신에서 비롯된  "대구정신'을 찾아서 라는 특강과 현장 체험을 - 6월/ 팔조령 북봉대, 계동 전경창의 무동재, 봉산서원(손린), 청호서원(순처늘)과 7월/신암 선열공원, 달성공원, 청라언덕, 이상화 고택, 대구 형무소 터, 대구상업고등학교(태극단)-하면서 선비 정신과 의병 활동, 독립운동을 했었던 선열들의 뜨거운 정신을 느꼈다.

 

 <여정 메모>

 

-제1차 강의, 체험 도움을 주신

 .06.07 : 계동 전경창을 롱해 본 선비정신과 칼/구본욱 교수

 .06.14 : 수성구 선비들의 의병활동/정만진 소설가

 .06.21 : 선비정신, 어떻게 받아들일까?/홍종흠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고문)

 .06.23 : 현장 체험 안내/정만진 소설가

 

-제2차 강의, 체험 도움을 주신 분

  .07.05:독립 운동가를 모신 국립묘지 신암 선열공원/정만진 소설가

  .07.12:대한광복회를 중심으로 본 대구지역 무장 독립운동/김병우 교수

  .07.19:태극단 사건을 중심으로 본 대구지역 학생 독립운동

  .07.21:현장 체험 안내/정만진 소설가

 

 

- 북봉대 터/팔조령 -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팔조령을 넘어 대구로 쳐들어 올때, 청도 남산 봉수대에서 팔조령 북봉대를 거쳐 파동 법이산 봉수대로 봉화를 피워 팔공산 본영으로 연락이 된 옛 군사 시설...지금은 잡초만 무성하게 덥혀있다.

 

 

 

- 계동 전계창 무동재/활쏘기)-

 

전경창(1532-1585), 전계신(1562-1614)등을 모시는 재실, 그 앞 마당에서 전통 활쏘기를 하면서 선열의 나라정신을 되새겨 보았다

 

 

-지행문/봉산서원(상동소재) 정문 현판-

 

 

- 봉산서원/의병활동-

 

손린(孫䢯1566-1628)의 위패를 모신 1766년 건립된 사당(봉암사), 1844년(현종10)봉산서원으로 승격. 차남 처신(處愼)과 손자 단(湍)이 과겨에 급제함으로써 3대에 걸쳐 대과에 올라 이름을 높였다. - 정만진 - 

 

 

 

- 청호서원 숭인사/손처늘을 모신 사당 -

 

임진왜란(1592-1598) 때, 대구 지역 의병 총 대장을 맡았던, 모당 손처눌(1553-1634)과 함께, 류시번, 손조서, 정호인 네 사람을 추모 하기 위헤 세원 서원이다. 서원 강당의 오른 편 산 기슭에 자리한 숭인사 외삼문에 그려진 1930년 대 태극 문양은 나무에 가려져 일본 경찰이 발견을 하지 못해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한다. 

 

 

 

-신암 선열공원 방문/단충각 -

 

우리나라 유일의 독립 운동가 전용 국립묘지로서, 2018.5.1 지정되었다.

 

 

-신암선열공원/국립묘지-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임용상" 지사를 비롯한 52분? 이 모셔져 있다.

 

 

- 달성공운/이상회 시비 -

 

사적 제62호로 지정된 삼한 시대의 "달성토성" 자리로써, 1596년 상주에서 경상감영이 이전되기도 했어며, 1907년 일본이 공원으로 지정한 후 대구신사가 세워지기도 한 곳이다. 1969 달성공원으로 탈바꿈하여 1970년 동물원이 개원되어 현제에 이르고 있다.

 

공원 내 "상화" 시비는 우리나라 문학사상 처음로 세워진 시비로써, 1948년 대구지역의 시 전문지 "죽순"동인들이 상화의 첫 작품 "나의 침실로"가 새겨져 있다.

 

 

-달성공원/어린이 헌장비, 서침이 나무 -

 

공원내에는 경상감영의 관풍루가 이건되어 있고, 동학혁명 교시자 최재우 동상을 비롯한 달성 서씨 유허비, 이상용 구국 기념비, 허위선생 순국기념비, 어린히 헌장, 세종 때  토지를 나라에 헌납하면서 지역민의 환곡 이자를  감면하여  줄 것을 청원 한 문신 서침(徐) 의  올 곧은 품성을 기리기 위해서 붙여 이름 지어진 300년 된 "서침이 화화나무"가 있다.

 

 

 

-이상화 고택 -

 

대구 출생인 이상화(李和,1901-1943) 시인은 민족의 저항 시인으로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대표 작품을 남기고 있다. 대구 근대 골목투어의 정점에 위치한 상화 고택을 둘러 보고서 과거 길 영남대로 이동 한다.

 

 

- 영남대로/현대백화점 뒷골목 -

 

 

- 영남대로/과거 급제 길 -

 

 

 

 

- 이상화  시/대구 형무소 터 내 -

 

 

- 옛 대구상업고등학교/근대등록 문화재 지정 -

 

 

태극단은 1942년 5월에 대구상업고등학교(현 상원고등학교)의 학생 26명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조직한 항일학생 결사단이다. 1973년 개교 50주년을 맞아 기념탑을 건립하였으나 1985년 학교가 이전(상인동)하면서 기념탑ㄷ고 같이 지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