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탄강/직탕폭포 -
한탄강(漢灘江)
북녘땅 강원도 평강군 상송관리, 장암산(長巖山, 1,052m) 남쪽 계곡에서 발원해 김화군과의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흘러 휴전선을 지나 남대천을 합류한다. 유로를 남서쪽으로 바꾸어 영평천(永平川)·차탄천(車灘川)을 차례로 합치고, 연천군 미산면과 전곡읍 도감포 사이에서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길이 134.5㎞에 이르는 임진당 제2지류다.
흔히 6·25전쟁 중 다리가 끊겨 후퇴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탄하며 죽었다'고 해서 불려진 것이라고 하나 이 명칭은 '크다·넓다·높다'는 뜻의 '한'과 '여울·강·개'의 뜻인 '탄'이 어울린 순수한 우리말이며, 이를 한문으로 음차한 것이다.
추가령 구조곡의 열하에서 분출한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용암대지는 평강·철원에서 임진강과의 합류점까지 뻗어 있다. 곳곳에 수직 절벽과 협곡이 발달했고, 휴전선에 가까워 이들 수직 단애의 골짜기는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이용되고 있다. 추가령 구조곡은 서울과 관북지방을 잇는 국도와 경원선이 통과하여 교통의 요지였다. 철원-평강 용암대지는 토질이 비옥해 벼·보리·밀·옥수수·콩·감자 등이 재배된다.
옛날 후고구려의 궁예가 도읍을 정하기로 했던 한탄강 유역에는 6·25전쟁 때 평강·철원·김화를 연결하는 철의 삼각지를 비롯해 백마고지, 단장의 능선, 김일성고지 등의 격전지와 제2땅굴, 38선경계비, 승일교, 만세교, 김일성별장, 필리핀군 참전기념탑 등 분단의 아픔을 실감하게 하는 전적비와 전적기념물이 많다.
또한, 유역 내에는 한탄강 유원지·남대천유원지·청암유원지, 직탕폭포·삼부연폭포·재인폭포, 매월대, 철원 8경, 고석정 및 순담(강원도 기념물 제8호) 등 자연경관이 빼어난 경승지가 많다. 또한 구석기 시대 유적지인 연천 전곡리 유적(사적 제268호)과 포천 영송리 선사유적(경기도 기념물 제140호) 등 고고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지역을 관류한다. -다음 백과 -
제7호 태풍 "쁘라삐룬"이 다행히도 한반도를 비켜 대한해협으로 벗어나는 날, 강원도 철원으로 안보관광 겸 소이산 산행을 나섰다. 갈 길이 멀어서 새벽 04시 30분에 일어나 3호선 첫차로 신남역에 내려 06:15분 탑승을 했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려 구리시와 남양주를 거쳐 포천시 신북 나들목을 나서 영중면 영평천을 지나 성동삼거리에서 운천으로 들어서 신철원 갈말읍에 자리한 삼부연 폭포에 도착했다.
강원도 철원 하면 나이가 든 우리나라 남자들은 대부분 거쳐 지나온 곳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 부대는 직탕폭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아서, 우리가 놀러 나왔던 곳인데...."
"성동 삼거리에서 삼팔교로 가는 산비탈에 00부대에 내가 근무했는데."
" 만세교에서 일동으로 거는 금주산 유격장에서 얼마나 뺑뺑이 쳤는데...."
젊은 시절의 군대 이야기라면 누구나 한 마디씩 끼어드는 곳이다.
포천이란 이름만 들어도, 내 삶의 커다란 부문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34개월 15일간의 군 복무 시절 - 제대 특명을 받고서도 완전 군장으로 연병장 군장 사열과 동초 근무를 했을 만큼, 시세 말로 빡빡하게 근무했다. 개구리(제대복)복 입고 무덕 고개를 넘었을 적엔 뒤돌아서 오줌도 누지 말라 했다. 만세교 100리 행군 길, 영평천 오가리 통신시설 추위 속의 경계 근무, 전곡리한탄강 진지 구축 작업, 삼팔교를 지나 사단 사령부가 있었던 이동과 신병 교육 시절 들렸던 군인극장, 신수리, 와수리 지역 800m 고지를 하루 네 번 떼(잔디)를 메고 올라 진지 보수작업을 했었던 40여 년 전의 기억은 - 오뚜기 8사단 땅개들의 군대 생활은 고달픔으로 끝을 맺었다.
철원은 코레일에서 운행되는 "DMZ 철원 안보관광"을 통해 4년 전에 동송읍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오늘 둘러볼 곳을 가보았던 곳이다. 삼부연 폭로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철원시가지나 길목은 접경 지역이 가깝다 보니 옛 모습이 오버랩 되어 지기도 했다.
태풍"쁘라삐룬"으로 남부 지역은 비가 내린다 했지만 철원 지역은 31도의 뜨거운 햇볕이 숨을 헐떡거리게 했다.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로로 불렸던 직탕폭포는 근래 내랜 비로 강물이 거세게 소용돌이치면서 흘러내렸다.
소이산(352.3m)이 있는 노동당사로 갔다.
철원평야에 우뚝 솟은 산으로서 북위 38도 15분 지점인 철원읍 사요리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군사기지이자 '민간인 출입통제선'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으나, 육군 6사단이 소이산 개방에 협의하면서 민, 관, 군이 함께 참여하여 2011년 6월에 착공하여 12월에 완공하였고, 2012년 마침내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이라는 이름으로 길을 열었다. 아직도 산책길을 제외한 구간은 지뢰지대로 철책을 곁에 두고 걷는 길이다. 고려시대부터 외적의 출현을 알리던 제1로 봉수대가 위치하였던 곳이며, 한국전쟁 이전 화려했던 구 철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철원역사의 중심지로 소이산 정상에서 백마고지, 김일성고지, 철원역, 제2땅굴, 노동당사는 물론 최대의 철새도래지와 철원평야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백과사전/대한민국 구석구석 -
6.25 전쟁의 아픈 상존의 상징물인 노동당사 건물을 둘러보고 맞은 편으로 보이는 소요산으로 향했다. 철원의 한여울길 6개 코스(52.4km) 중 제5코스(노동당사-지뢰 꽃 시비-소아산 정상-노동당사, 4.8km)로서 정상을 올랐다가 되돌아 나오는 원점 회귀형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으로 철조망 울타리를 끼고 돌았다. 지뢰란 삼각 노란표식이 전방지역임을 느끼게 했다. 지뢰 꽃 시비를 지나 오솔길로 접어들자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세찬 빗줄기를 뿜어 됐다. 숨도 제대로 못 쉴정 정도로 뜨겁던 날씨가 기어이 일을 내고 말았다. 온몸으로 맞을뿐이었다. 정상을 포기하고 되돌아 나왔다. 무척 오랜만에 흠뻑졌어 보았다.
경원선 백마고지 역을 둘러서 귀갓길에 올랐다. 밤 자정이 넘어서 도착한 대구에는 우산을 받칠 만큼 비가 내렸다. 쁘라삐룬의 마지막 안간힘이었다.
우산을 받쳐준 아주머니가 비에 젖은 옷을 털어내다 선글라스를 분실했다 했다. 미안한 마음이 내내 들었다.
<여정 메모>
-일시:2018.07.03(화/ 06:15)~07.04(수/00:30)
-곳 :철원 일원(삼부연 폭포, 직탕폭포, 고석정, 노동당사, 소이산 둘레길)
-함께:4명(시등회원, 대박산악회 동행)
- 동산동 양말골목/신남역-
- 포천 시가지/신북면 소재지 -
- 철원군/갈말읍 시가지 -
- 철원/들녘-
-삼부연 폭포 -
-용화 저수지 -
- 고석정 관광단지/비행기 -
- 임거정 조형물 -
- 고석정 -
- 고석정/한탄강 유람선 -
- 고석정(임걱정 바위)/한탄강 -
-고석정/한탄강 -
- 철원 금학산 -
- 한탄강 -
- 태봉교/한탄강-
- 직탕폭포/한탄강 -
-직탕폭포-
-직탕폭포/한탄강-
-한탄강-
- 철원/들녘-
- 노동당사 -
-노동당사 -
- 노동당사 -
-소이산 전경 -
- 소이산 둘레길에서 만나는 지뢰 표식 -
- 소이산 둘레 길에서 / 먹구름 -
-백마고지 역 전경 -
- 철마는 달리고 싶다/백마고지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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