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정지(鮑石亭址)!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의 자리가 아닌 신라 천년 사직의 마지막을 고했었던 공간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곳이다.
포석정을 처음 찾았던 것은 30년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1972년도의 봄날 이었다. 오늘처럼 저만치 줄지어서있는 학생들 틈새에 함께했는데... 포석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나는 귀밑머리가 쉬어가고 있다.
나정(蘿井)과 양산재(陽山齋)
천년 사직을 일으켜 세운 박혁거세 왕이 태어난 곳인데 비석 하나만 달랑 서있고 잡초만이 무성히 경내를 뒤 덥고 있다. 나정을 옆으로 한걸음 돌아서면 내외 삼문으로 들어서지는 정갈한 건물 양산재가 있다. 진한 6부 촌장의 위폐를 모신 사당이다. 전사청(典祀廳) 앞뜰 파란 잔디엔 새하얀 이름모를 들꽃이 만발했다.
남간사지 당간지주(南澗寺址幢竿支柱)
산 아래 논 가운데 우뚝 세워져 있는 두개의 돌기둥은 먼발치에서도 당간지주임을 알 수 있었다. 좁은 논둑길로 들어서 당간지주가 서있는 어린모가 심겨진 논길에 멈추어 선다. 보물 제909호라는 안내판의 내용에는 이곳에서 옛 절터인 남간사지는 500m 떨어진 곳에 있었던 모양인데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수 없었다..
창림사지(昌林寺址)와 삼층석탑(三層石塔)
신라 천년을 열었던 궁궐지이였다는 창림사지로 찾아가는 길은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안내판 하나 눈에 뜨이지 않아, 이 논둑길 저 산자락의 이골 저골 등성이를 넘어 포석정 뒤 포석 마을까지 내려갔다. 감나무 밭에서 일을 하는 농부의 도움으로 넘어온 건너편 솔밭으로 찾아갔다. 길 초입부터 나뒹구는 석 부재들을 뒤로하고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서니 눈앞으로 엄청난 크기의 석탑이 나타났다. 탑은 햇살을 받아 금색의 서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2층 기단부에 부처님을 지키는 팔주신중 아수라가 금세라도 나올 것 같다.유월의 따가운 햇살아래 어렵사리 찾아온 보람을 가질 수 있었다.
서 남산(西南山) 자락....
천년 신라의 태동과 마지막 한을 고했던 자리...
힌두루미 긴 날개 짓......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일 시 : ‘07.6.6(수) 10:30~13:00
◀ 곳 : 포석정, 지마왕릉, 나정, 양산재, 당간지주, 창림사지, 월정교지, 임해전(안압지)
-포석정지( 먼 곳으로 관람온 학생들이 모습이 보인다.)
-지마왕릉(신라 제6대왕)
-박 혁거세 왕 탄생 신화의 나정 터
-양산재 입덕조 내의 6부 촌장의 위패함
-남간사지 당간지주
-창림사지 삼층석탑(산 아래에서 바라 보았을시 황금 빛의 서기가 비추었음)
-기단부에 돋을 새김을 한 팔부신중( 아수라)
-월정교지
-월정교 석축 부재들
-안압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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