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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면

길 위에서 만나다


- 남산 기암골 삼층석탑 -

바람이 양 볼을 차갑게 스치는 날 기암골을 찾아 들었다.

이름조차 사라진 폐사지에 서 있는 탑을 찾아서다. 동장군이 며칠간 위세를 떨쳤는데 기암골 자락을 밟는 날은 부처님의 온기 탓인지 걸을 만 했다.

남산은 일찍 불국정토를 꿈꾸어 온 신라인들의 염원이 골마다 서려있는 곳이다. 골과 능선마다 탑과 불상, 절터가 산재해 속인이 부처님을 길 위에서 만나는 곳이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한참 따라 돌아서면 잡초에 묻힌<기암골 제1사지>축대가 덩그렁히 나타난다. 어떤 사유로 언제 사라진 절터인지 아무도 모른다.

나목의 가지 사이를 헤치고 개울 옆길을 더 올라서면 우거진 대밭이 나타나면서. 또 한 곳의 돌덤이가 세월의 영겁을 부등켜 안고 있다. <기암골 제2사지>터다. 골바람이 올라오는 저만치에 아침 햇살을 머금은 탑이 서 있다. 2002년도에 복원했다는 <기암골 삼층석탑>이다. 2단의 기단석 위에 몸신과 옥신이 각각 따로 다듬어진 탑으로, 1층 몸신 남면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문비가 새겨져 있고, 옥신의 층급이 4단으로 미루어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서너 발 옆의 풀 속에 서 탑의 부재가 지대석위로 엉키어져 있어, 쌍 탑 가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 했다.

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뒤 8부 능선 바위에 새겨진<선방곡 마애여래입상>을>보기 위해 골 안으로 바로 올랐다. 아내와 함께하지 아니한 혼자만의 길이라면 되돌아 나올 뻔 했다. 좌측 등성이로 올라서니 황금대에서 톱날 같은 바위가 금송정으로 향해 마치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듯 했다. 발길을 돌려 얼음이 얕게 얼어붙은 계곡을 건너 우측 능선으로 올랐다. 바둑 바위와 금송정 터로 오르는 능선길이 나타났다.

상선암 <선각 보살상>을 잠시 들렸다, <상선암 마애대좌불>로 해서 상사바위 산아당 옆의 목 없는 <소석불>을 보고 금송정 터로 올라섰다. 발아래로 남천을 넘어 선도산과, 벽도산을 휘감아 도는 넓은 평야가 시원스럽게 조망되었다. 속세의 마음에 묻은 때를 털어 내었다.

바둑바위를 좌로 돌아<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능선으로 내려섰다. 길목에서 <선방곡 마애여래입상>을 만났다. 비바람에 희미한 윤곽만 남아 있어 세월의 흐름이 안타까웠다. 측은한 마음은 마애불뿐만 아니었다, 숲 속 동아줄이 둘러 처진곳에 머리가 잘린 채 누워 있는 불상을 바라보면 형언키 어렵다. 깨달은 자의 현신이 저렇게 내동댕이처져 있다는 것은...

삼불사의 정갈함과 망월사의 연화탑을 둘러서 포석정지에서 비운의 생을 맞이한 경애왕의 무덤을 더듬었다. 노송이 왕릉에 읍을 하듯이 가지를 늘어 떨이고 있었다. <입곡 석불두>와 효자각을 보고, 복원공사가 한창인 <월정교>에서 여정을 마무리했다.

“치우치지 말고 융통하라” 법전 스님의신년 법어다. 집착을 버리고 마음속 본래의 자리를 활용하는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치를 언제쯤 깨달을 수 있를런지....

<여정 메모>

- 일 시 : 2011.12.27.(화) 09:30~17:00

- 곳 : 남산 일원

- 함 께 : 청산내외

-기암골 제1사지 터 -


- 선방곡 능선길로 향해서-


- 상선암 전경 -

- 마애석가여래좌상 -


- 금송정 터에서(남천에서 건천으로 향하는넓은 평야가..) -


- 선방곡 마애여래입상 -

- 목이 없는 불상-

-배동 석조여래삼존 입상 -


- 입곡 석불두 -

- 태진지 -

- 경애왕릉(신라 제55대)-


- 복원공사 중인 월정교(사적 제45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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