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의 현대사를 탈바꿈시킨 산실이자,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동력이 살아있는 곳 울산으로 간다. 얼마 전, MBC-TV 방송국의 “테마기행 길 – 울산 걸어서 저 바다로 가자” 편에서 북구 어물동 마애여래좌상과 당사마을 회관 마당에 있는 500살 느티나무, 정자동 산 20번지 600년 된 붉은 소나무 “활만송”의 끊임없는 유혹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 경주 톨게이트를 나와서 울산과 부산으로 가는 35번 국도를 달리다, 7번 일반국도로 외동읍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도로가 사통팔달 나 있음에도 14번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울산공항과 북구청을 지나 동해안으로 올라가는 31번 국도로 진입하여 무룡 터널을 빠져나가면 어물동으로 가는 지방도로로 내려서 진다. 내비게이션(navigation)이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복잡하다.
마애사 옆 어물동 마애여래좌상(시 유형문화재 제6호) 주차장에 도착했다. 토요일인데도 차량이 드문드문 보였다. 방 바위 약사불 부처님은 좌우 월광, 일광 협시보살과 함께 돋을새김으로 표현되어 있다. 바위 사면이 수성암 인지 많은 이물질이 썩여 있고 마멸이 심한 탓에 상호가 뚜렷하지 않다. 심신 깊은 불자가 열심히 기원 한다.
마애불상을 뒤로하고 방방천을 따라 금천마을 당산나무를 찾아갔다. 들판 가운데 하늘로 가지를 뻗은 수려한 자태의 당산나무는 신령 서럽게 보였다. 수령이 260년이나 넘었다는 팽나무에는 금줄이 처져 있었다. 그 아래 당집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볏짚을 세워둔 당산나무 둘레를 몇 번이나 서성이다 논둑길로 나왔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사대부 기와집은 음식점 간판이 전신주에 걸려 있었다.
당사항 자연산 직판장으로 갔다. 아담한 항에는 여남은 배가 닻줄을 내리고 있었다. 포구에는 가자미를 손질하여 말리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생각보단 뜸했다. 자연산 가자미 회 값이 저렴했다. 착한여행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점심을 했다. 코로나 19 파도는 작은 어촌에도 밀려왔다. 당사회관 마당에 뿌리를 박고 있는 500살 느티나무 보호수를 둘러보고 정자항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정자동 산 20번지 죽전마을에 있는“활만송”을 찾아갔다. 먼발치에서부터 범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소나무는, 한 마리의 거대한 붉은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만 같았다. 600년이 넘었다는 소나무는 대단한 위용(높이 13m, 가슴둘레 4.46m, 수관 폭 20.6m)을 보여서 쳐다보는 마음이 떨렸다. 유포석보 산성 터가 있는 서쪽 사면 자락의 “활만송”은 1399~1410년 대밭골(죽전) 마을 입향조 김비(金秘)가 마을을 세우면서 심었다 한다. 그 뒤 세전송(世傳松)으로서 불리어오다, 1982년 울산시가 보호수로 지정하면서 “활만송(活萬松)”으로 명명되었다 한다.
정자항 뒤 나지막한 야산으로 올라간다. 유포석보(柳浦石堡, 울산시 기념물 제17호))의 흔적을 더듬어보기 위해서다. 조선 시대의 보(堡)는 제진(諸鎭)의 보조적 방어시설이었다. 소규모의 성이지만 최전방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고, 유사시 주민을 대피시키는 등 중요한 전투 기능을 가졌다 한다. 문종 즉위년(1450)에 구축되어 세조 5년(1459)에 석성(石城)으로 완공되었으며, 그 둘레는 750m 정도로 추정했다(유포석보 안내 글)
신라 충신 박재상(朴堤上)의 “사왜시발선처(使倭時發船處)”를 둘러서 여정을 마쳤다. 그간, 정자항을 몇 번 들렸다는 안일한 생각만을 가지고 곧바로 돌아왔다. 정자시장을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나들이였지만 보람 있었던 하루였다.
<여정 메모>
-언제 : 2021.03.13. (토) 09:00~17:00
-어디 : 울산광역시 북구 강동 사랑길(1구간, 7구간(A/B 코스) 각 일부)
-누구 : 청산 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