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높은 곳을 향하여(부도浮屠6/해인사)
- 성주 백운리 마애 여래입상(도문화재 제366호) -
09시30분의 가야산 백운동 주차장....
가야산으로 산행을 나섰는데, 비가 여름날 소낙비 같이 주럭주럭 내렸다. 산행의 결행 여부를 두고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일기예보는 5mm 내외 약간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지만......, 10시 정각엔 나서기로 했는데 다행히 웃비가 멈추는 듯 하드니, 고도가 높아 질수록 진눈개비로 변했다.
지난번 비슬산 산행 때의 종아리 당김이 여의치 않아 극락골로 내려설 계획하고, 동성재 아래에 있다는불상(성주 백운리 마애여래입상)을 찾아 올랐다. 석불이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능선을 한참 오르니 일요암 터와 마애불로 가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그래도 마애불은 두 군데의 이름도 없는 폐사지를 지나 가파른 협곡을 올라선 안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신라 하대에 조성된 것이라 하지만, 왜 이처럼 높고 험한 곳에 자리했을까?. 의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시30분에 설화가 만발한 서성재에 올라섰다. 늦은 시간을 감안 극락골로 실례를 해 ‘치인리 마애불 입상’으로 갔다. 높이가 530㎝ 되는 만큼 자연석에 새겨진 입상으로서는 웅장해 보였다.
장갑을 낀 손이 얼얼하리 만큼 진눈개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용탑선원의 고암 스님의 부도를 지나 홍제암으로 넘어갔다. 입구에는 ‘사명대사 부도와 석장비’가 횡렬로 늘어 서 있었다. 암자의 처마 끝으로 눈발이 제법 크게 흩날렸다. 홍제암을 내려서 다시 건너편 비봉산 자락의 원당암으로 올라갔다. ‘공부하다 죽어라 공부하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라고 법문을 남긴 혜암 스님의 미소굴 뒤 보궁터에서 바라보는 해인사의 전경은 해동제일의 가람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보광전 앞의 ‘다층석탑과 석등’을 둘러보고 해인사 본당으로 올랐다.
해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서.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때의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창건하였다고 전 한다. 그 후 1398년(태조 7)에 강화도선원사(禪源寺)에 있던 고려팔만대장경판(高麗八萬大藏經板)을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곳으로 옮겨와 호국선암의 요람이 되었다. 통도사(通度寺:佛寶사찰), 송광사(松廣寺:僧寶사찰)와 더불어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로 법보(法寶)사찰이며, 팔만대장경판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봉황문과 일주문을 내려서면 "당간지주"와 “반야사 원경왕사비”와, “해인사 길상탑”이 있다. 그 옆 언덕위에 정갈하게 조성된 성철 스님의 부도를 둘러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오후 4시 정각에 귀가 길에 올랐다. 저녁 햇살을 받은 산봉우리가 황금빛을 발했다.
<산행 메모>
- 일 시 : 2008. 11.29.(토) 10:00~16:00
- 곳 : 가야산 및 해인사 일원
- 함 께 : 38명(직장동료)
-해인사 사명대사 부도 및 석장비(보물 제1301호)-
- 눈 내리는 홍제암 전 경 -
- 원당암 보궁터에서 바라본 해인사 전경-
- 성주 백운리 마애여래 입상 가는 길목의 페사지-
- 석불 입상 가는 협곡 오름길 -
- 진눈개비가 내리는 서성재 오르는 꾼들 -
- 치인리 마애불상 가는 길 -
-합천 치인리 마애불 입상(보물 제222호)-
-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보물 제518호/보광전 축대 안상)-
- 해인사 대적광전 앞의 삼층석탑및 석등(도문화재 제254호)-
- 해인사 대장 경판(국보 제32호)-
- 국사당 내 토지가람신 인 '정견 모주'(깨달음을 얻은 어머님이란 뜻)-
- 해인사 길상탑(보물제1242호) -
- 해인사 성철 스님 부도-
- 원당암에서 바라본 가야산 정상 전경 -